벤처투자 활성화의 조건

삼성전자는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 인사이드'의 5개 우수 과제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C랩 인사이드는 삼성전자가 창의적 조직 문화를 확산하고 임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2012년 12월부터 도입한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C랩 스핀오프 제도를 도입해 우수한 C랩 인사이드 과제들이 스타트업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독립하는 5개 스타트업은 ▲컴퓨터 그래픽(CG) 영상 콘텐츠를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 ▲종이 위 글자를 디지털로 변환관리해주는 '하일러(HYLER)' ▲AI 기반 오답 관리와 추천 문제를 제공하는 '학스비(HAXBY)' ▲인공 햇빛을 생성하는 창문형 조명 '써니파이브(SunnyFive)' ▲자외선 노출량 측정이 가능한 초소형 센서 '루트센서(RootSensor)' 이다.

(출처=http://assettips.blogspot.com)
(출처=http://assettips.blogspot.com)

2015년 8월 처음 도입한 C랩 스핀오프(Spin-off) 제도는 창업자들에게 초기 사업자금과 창업지원금을 제공하고 희망할 경우 스핀오프 후 5년내 재입사 기회를 부여한다.

현재까지 163명이 창업해 45개의 스타트업을 설립했고 스핀오프 이후 유치한 투자금도 550억 원에 육박한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5년간 C랩을 통해 사내 임직원 스타트업 과제(C랩 인사이드) 200개, 외부 스타트업 육성(C랩 아웃사이드) 300개 등 총 500개의 사내외 스타트업 과제 육성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의 벤처투자
리나라의 벤처투자가 활성화돼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미진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벤처 투자는 초기에 집중되고 후기 단계에선 약하다. 

이른바 ‘엑시트’(exit·성장한 벤처기업이 M&A 등으로 자금회수)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민간 유휴자금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최근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벤처업계의 대기업자금 참여 요청, 신기술 획득 또는 신산업 진출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얻으려는 대기업의 전략적 벤처투자 수요, 모회사의 기술개발 및 마케팅 인프라 지원이 가능한 CVC의 장점 등으로 규제완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의 벤처·스타트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수단으로 삼성·SK·LG와 같은 일반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CVC)을 가질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는 CVC를 통한 투자규모가 약 30% 차지할 정도로 인터넷, 테크기업들의 벤처회사 직접투자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글로벌 CVC 투자 성장세는 놀랍다. 지난해 기준 세계 벤처투자의 약 30%가 CVC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8년 기준 CVC 투자 규모는 약 78조로 10년 새 10배 이상이 증가했다. 구글의 구글벤처스, 인텔의 인텔캐피털, 중국의 바이두벤처스 등이 대표적인 글로벌 CVC 사례다. 현행법 체계에서도 대기업의 CVC를 통한 벤처투자가 가능하나, 지주회사체제 그룹의 경우 CVC 소유 금지로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벤처 캐피털(CVC)
자본과 기술의 결합이라 불리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 Corporate Venture Capital)은 대기업이 벤처투자(지분인수)를 위해 자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금융회사를 뜻한다.

일반적인 벤처캐피탈이 투자자를 모집한 후 공동으로 투자한다면, CVC는 기술기반 스타트업에 전략적으로 투자 후 인수합병(M&A)를 통해 자사 사업에 적용함으로써, 투자-성장-회수로 이어지는 벤처 선순환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현행법은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로 하고 있다. CVC가 금융업으로 분류되고 있어 금산분리 원칙(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대주주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이에 따라 자기자금과 외부투자자금을 모아 조성한 벤처투자펀드를 통해 스타트업 및 벤처회사에 투자 운용하는 벤처캐피탈은 금융업으로 분류돼 일반지주회사 소유가 금지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각 그룹사가 해외에 벤처캐피털을 두거나(SK, LG), 다른 계열사 산하에 벤처투자 조직을 두는(삼성, 롯데) 식으로 사실상 편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안정적인 자본이 필요한 스타트업 · 벤처 업계와 새로운 기술 영역을 모색해야 하는 대기업들 모두, 오래전부터 CVC 설립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대기업 벤처투자가 활성화돼야 하고, 민간자본이 활발하게 유입될수록 벤처기업 성장 가능성도 커진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정부도 전향적으로 CVC를 허용해줘야 한다는 기조로 가닥을 잡고 있다.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관련부처는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보유에 대한 보완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대략적인 안(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혁신인가 특혜인가
CVC 허용의 방향은 기정사실화됐지만 쟁점은 여전하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의 벤처투자를 촉진시키자는 주장에는 동의하면서도 투자촉진 방법이 과연 일반지주회사의 CVC 설립 허용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가장 큰 쟁점은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벤처회사에 CVC가 투자할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다. CVC가 편법 승계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논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가 CVC 전면 허용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근본적인 비판의 이유는 금산분리 규제를 깰 수 없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식 지배’를 가능케 하는 지주회사체제 자체가 특혜인데 CVC까지 갖게 하는 것은 또 다른 특혜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지주회사체제에서 CVC를 설립하려면 ‘비금융회사로서의 속성’이 강한 경우에 한해 내부자금으로만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도 ‘벤처캐피털(CVC) 규제완화는 혁신인가? 재벌특혜인가?’ 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편법승계’처럼 재벌 총수가 연관된 불공정 거래를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예컨대 대기업 지주회사가 만든 CVC는 총수가 지분이 있는 기업에 투자할 수 없도록 하고, 편법 승계와 연관 있을 만한 내용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총수일가의 세습과 사익편취에 악용될 수 있고 현행 지주회사 규제를 무력화하는 법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CVC 규제완화 방침이 밝혀진 이래 꾸준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주회사는 책임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도입됐는데 CVC를 통해 다른 기업을 지배하게 되면 지주회사 장점이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CVC 투자 역시 정말 전략적인 투자인지. 총수일가 지원인지, 기술 상용화·개선 목적인지, 일감몰아주기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양한 입법안들
입법 단계부터 이런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명문화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내달 CVC의 제한적 보유 방안에 대해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여야는 현재 앞 다퉈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원욱·김병욱 민주당 의원, 송언석 통합당 의원이 지주회사가 CVC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제한적 보유 방안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일반지주회사가 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CVC)을 제한적으로 소유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중소벤처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CVC 규제 완화를 하되, 금산분리 원칙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먼저 일반지주회사가 자회사 CVC 지분을 100%(현행법은 비상장사 자회사 40% 이상) 소유하도록 함으로써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간 이해상충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함과 동시에 총수일가의 CVC지분확보를 차단했다.

또 CVC 업무를 '벤처투자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른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의 업무로 제한했고 투자의무나 방식에 대한 규제가 없고 대출 등 금융행위도 가능해 이를 통한 계열사 지원 등 사금고화가 우려되는 신기술금융사업자는 제외했다.

정부 최종안과 별도로 중소벤처기업부는 앞서 ‘일반지주회사가 100% 소유한 완전 자회사’ ‘벤처투자만 수행하는 전업 창업투자회사’ ‘계열사 내부자금으로만 펀드 조성 등 조건을 갖출 경우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을 세우기도 했다. 계열사 내부자금만으로 벤처투자를 하게 하면 대기업 자금 유용도 방지할 수 있다.

벤처 투자 환경
구글, 애플, 아마존 등 해외 대기업은 이미 CVC를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하며 미래 먹거리 발굴에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다. CVC 역할이나 영향력은 이미 해외에서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18년 미국 기준으로 CVC는 전체 벤처투자액의 51%를 차지한다. 일본도 44%가 CVC 몫이었다. 한국은 9% 정도에 그친다.

물론 실제 주요 CVC는 투자 전략 노출을 막기 위해 자체 자금으로만 투자하고 있다. 구글 지주사인 알파벳은 CVC인 구글벤처스의 지분을 모두 갖고 있으며 투자자금도 자체 조달하고 있다.

미국에서 CVC를 운영하는 SK와 LG도 투자 전략 노출을 우려해 100% 자체 자금으로만 사업을 하고 있다. 삼성 CVC인 삼성벤처투자도 외부에서 조달하지 않고 벤처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구글의 사례와는 달리 100% 자기자본으로 투자하지 않고 여러 기관의 투자를 받는 CVC도 존재한다.

사실 미국에서 계열사 편입을 통한 투자금 회수 비중이 높고 CVC가 활성화되는 중요한 원인은 기술 탈취에 대한 징벌배상 때문이기도 하다. 징벌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프리미엄’을 주고 벤처기업을 사버리는 것이다. CVC 규제완화이전에 징벌적 배상이나 디스커버리 제도(특허 침해 기업의 증거자료 요구권) 도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합리적 접근이 필요
CVC가 도입되지 않아서 벤처생태계 자금이 부족하다는 식의 접근은 물론 옳지 않다. 반면 대기업 투자를 경제력 집중 가속화라고만 보면 해답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CVC 설립 문턱을 낮추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사실 CVC는 대기업보다 스타트업과 벤처 업계가 대기업과의 상생 모델로 허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항이다.

게다가 CVC와 경쟁을 해야 하는 벤처캐피털까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처럼 CVC와 벤처캐피털이 경쟁하면 벤처펀드의 판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타트업들은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총수일가를 배제하거나 총수일가 지분 기업 투자를 배제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서는 CVC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투자 활성화라는 지주사 CVC의 취지를 살리면서 이를 허용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막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CVC 허용은 스타트업 생태계 확장의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다. 사실 벤처투자는 위험투자영역이기 때문에 활성화가 쉽지 않다.

펀드 결성이 안 되니까 투자도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편법적인 운용 가능성은 투자 현황, 자금 대차관계, 특수관계인 거래 등에 대한 공정위 보고 의무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막을 건 철저히 막으면서 투자 영역은 재벌들에게 열어주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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