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사인 CJ ENM과 방송 플랫폼 사업자인 딜라이브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방송 플랫폼과 채널간의 주도권 다툼이다. 이해관계를 둘러싼 서로의 입장 차가 극명하게 벌어지며 블랙아웃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채널분쟁은 프로그램사용료 인상으로 촉발됐다.

CJ ENM은 자사 콘텐츠 수신료의 인상을, 딜라이브는 업계 상황을 고려한 요율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CJ ENM은 딜라이브에 사용료를 올려주지 않으면 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는 이른바 '블랙아웃'을 통보했고 딜라이브는 무리한 요구라며 맞서고 있다. 국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가 유료방송 플랫폼을 상대로 ‘블랙아웃’을 통보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CJ의 채널공급중단 통보
CJ ENM은 딜라이브에 오는 17일 tvN과 OCN, 엠넷, 투니버스 등 총 13개 채널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딜라이브는 가입자 200만명의 수도권 최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다.

이렇게 되면 약 200만명의 딜라이브 가입 시청자들이 CJ ENM 채널을 볼 수 없게 된다. 앞서 CJ ENM은 올 3월 딜라이브에 공문을 보내 자사 콘텐츠 프로그램 사용료를 전년보다 20% 올려줄 것으로 요구했다.

프로그램 사용료는 플랫폼 사업자인 SO가 CJ ENM과 같은 채널 제공 사업자에게 지불하는 수신료다. CJ ENM은 딜라이브가 지난 5년간 내야하는 프로그램 사용료를 동결한 것을 들어 이번에 20% 인상안을 제시했다. 이에 딜라이브가 응하지 않자 블랙아웃 경고라는 초강수를 띄운 것이다.

딜라이브의 입장
딜라이브의 입장은 물론 다르다. CJ ENM으로부터 받아야할 홈쇼핑 송출 수수료가 작년 하반기부터 일방적으로 깎이면서 그만큼 받지 못한 미지급금을 상계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딜라이브에 따르면 CJ오쇼핑(CJ ENM과 2018년 합병한 홈쇼핑 업체)은 작년 7월부터 딜라이브에 내는 송출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20% 인하해 지급하고 있다.

딜라이브 입장에선 CJ오쇼핑으로부터 받을 송출 수수료가 깎인 만큼 CJ오쇼핑과 한 회사인 CJ ENM에 지급할 프로그램 사용료를 동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SO들은 딜라이브의 편이다. 개별SO는 지난 6일 입장문을 내고 "방송 수신료 매출과 가입자가 모두 역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콘텐츠 사업자의 일방적인 요구가 개별SO를 또 다른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을까 두렵다"고 밝혔다.

플랫폼과 콘텐츠
CJ ENM은 PP(Program Provider·프로그램공급자)다. 이 PP들은 콘텐츠를 제작해 유료방송 송출권을 가진 딜라이브와 같은 SO(System Operator· 종합유선방송국)들에게 제공한다.

사업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각 주체들의 입장에서 PP들은 가능하면 높은 수신료로 자사 콘텐츠를 제공하려 하고, SO들은 가능하면 저렴한 수신료로 콘텐츠를 확보하고자 한다.

그 연장선에서 PP와 SO들이 의견 차이로 인한 소소한 분쟁은 지난 십 수 년 동안 있었다. 대부분은 협상을 통해 해결됐다.

중재에 나선 정부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해당 사안의 담당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중재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9일 CJ ENM, 딜라이브 실무자가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두 회사에 대한 중재에 나설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회의에서 양쪽의 프로그램 송출 수수료 분쟁의 중재를 시도하되 방송법상 시정명령이 가능한 '정당한 사유없이 시청자의 이익을 현저하게 저해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살필 방침이다.

과기정통부가 중재에 나서긴 했지만 상황 반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말 그대로 중재일 뿐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어 사업자가 안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실제 CJ ENM은 중재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딜라이브에 채널송출 중단 사실을 가입자에게 미리 고지하라며 추가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양 측 의견 차이가 워낙 커 중재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정부 중재라는 게 특정 사업자의 입장을 우선시 할 수 없기도 하다.

블랙아웃의 가능성
방송법 제85조의2에 따르면 딜라이브와 같은 채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채널·프로그램 제공, 다른 방송사업자등의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설비에 대한 접근을 거부·중단·제한하거나 채널 편성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CJ ENM 13개 채널의 방송 중단 전 딜라이브가 정부에 관련 내용을 신고하고 과기정통부도 이를 받아들여야 방송 중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CJ ENM이 송출중단을 강행할 경우다. 방송법은 딜라이브와 같은 채널사업자의 금지행위를 명시하고 있을 뿐 CJ ENM과 같은 PP가 일방적으로 송출을 중단하는 데 대한 금지조항은 없다. 결국 양사의 계약기간이 끝났고 계약에 대한 대가 지급이 충분치 않아 벌어진 사안이다.

딜라이브가 아닌 CJ ENM이 송출을 중단했을 때는 막을 방법이 없다. 현행법상 CJ ENM이 일방적으로 송출을 중단하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미 CJ ENM은 딜라이브가 가입자에게 채널공급 종료에 대한 안내공지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법인 합병으로 CJ ENM이라는 이름아래 콘텐츠 사업부문 CJ E&M과 한 지붕으로 묶인 홈쇼핑 채널 CJ오쇼핑은 현재 딜라이브와 홈쇼핑 송출 수수료 인하 문제로 이미 민사소송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해당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7월에도 과기부는 CJ오쇼핑과 딜라이브의 사이에서 중재에 나섰으나 끝내 실패했다. 만약 과기부의 중재로도 이 사안이 해결되지 못하면 양 측은 '또 한번' 민사소송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배경
플랫폼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갈등이 악화되는 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시장 상황때문이기도 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방송광고 매출은 3조9억원으로 전년보다 7% 감소했다.

지상파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종합유선방송(SO), 위성방송 등 대부분 업종의 매출이 일제히 감소한 결과다. 그나마 IPTV가 유일하게 매출이 늘었지만, 성장세는 해가 갈수록 둔화하는 추세다.

여기에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광고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뉴미디어 공룡들은 국내 시장을 뒤흔들면서 기존 방송 사업자의 위기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오래된 갈등
사실 수익 배분과 편성권을 둘러싼 업계의 갈등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방송 플랫폼과 채널 간 새로운 게임의 룰을 정립하기 위한 주도권 다툼이자 방송 시장의 위기감이 반영된 현상이기도 하다.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LG헬로비전이 자체 평가 결과에 따라 티캐스트의 씨네프 채널 송출을 종료하기로 하자, 티캐스트가 이를 금지하는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법원에서 기각된 일도 있었다.

올 초에도 LG유플러스와 CJ ENM의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 과정에 또 '블랙아웃'이 거론될 정도로 업계 갈등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과거 티브로드-티캐스트, CJ헬로비전-CJ ENM 체제에서는 양측이 서로의 사업을 배려하는 관행이 있었다.

하지만 티브로드는 SK텔레콤에, CJ헬로비전은 LG유플러스에 각각 인수된 지금 이런 관행이 설 자리는 없어졌다. 새로운 시장에 맞는 새로운 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자칫 사업자간 갈등은 업계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힘겨루기에 피해를 보는 쪽은 결국 시청자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케이블TV(MSO)와 개별·중소 채널사업자(PP)간 프로그램 사용료 관련 분쟁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이다. 일이 생기고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그때 그때 정부가 나서서 중재하고 충돌하는 것은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채널분쟁과 관련해 정부의 법적 구속력을 높이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지금으로서는 사후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분쟁조정절차도 사업자의 신청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 채널계약 분쟁을 최소화할 제도적 장치 보완이 시급하다.

채널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SO와 PP의 관계 재정의가 우선이다. 지금까진 플랫폼 사업자가 PP보다 우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PP도 플랫폼사업자와 함께 일정한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맞다.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플랫폼사업자, 방송채널용사업자, 지상파 그 어느 곳도 시청자를 볼모로 삼을 수는 없다.

정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중재를 위한 노력을 병행하는 한편, 가이드라인에 그치지 않고 법적 구속력을 갖춰 시청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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