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암호화폐’

암호화폐를 ‘허황된 신기루’라고 격하게 비판했던 유시민 작가에게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선생님이 블록체인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의 적절함은 차치하고라도, 이 즈음 암호화폐 논란에서 새삼 정부와 사회 일각의 성급한 무지를 보는 듯 하다. 장삼이사가 ‘4차산업혁명’을 마치 뉘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하지만, 정작 그것이 함의하는 깊숙한 코드에 대해선 놀랄 정도로 무지한 현실. 그것이 이번 암호화폐 사건을 통해 노출된 것 같다. 정 교수의 말인즉, ‘암호화폐’ 너머의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구동하는 분산기장 방식의 블록체인, 그 복잡한 매트릭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진화를 거듭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 필자도 공감한다. 그렇다면 “거래소를 폐지할 수도 있다”는 정부의 호통은 회색빛 법기능주의에 매몰된 법무 관료들의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 일단 넘어간다 치자. 그러나 한 시대의 대표 지식인으로 존중받는 이조차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로 나타난 수많은 이상한 장난감 갖고 사람들이 도박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하는 데엔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롤러코스터를 타는 최근의 암호화폐 시장은 분명 비정상이다. 투기를 억제하고, 많은 선의의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시급하다는 데엔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온 세상이 그토록 떠들어대는 ‘4차산업혁명’의 중요 엔진이라고 할 블록체인과 공유경제, 그것이 수렴되는 탈권위와 분산, 탈중앙집권의 가치, 그리고 작금의 사태가 있게 한 우리 사회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고, 공부도 게으르다는 점이다.

다들 알다시피 암호화폐의 플랫폼은 블록과 블록의 사슬구조, 즉 휴먼클라우드다. 그 가운데 가장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결과물의 하나가 암호화폐다. 비(非)시장에서 블록체인 시티즌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삶의 방식’을 제품과 서비스 형태로 교환하고, 그 과정에서 실물화폐 단가로 ‘약속’한 특정 교환가치가 암호화폐로 표출되었으며, 그 자체가 거래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일각에서 부르는 ‘가상화폐’란 명칭도 적절치 않다. 공유경제 주체들의 실물에 대한 욕구가 분산기장을 통해 인증되고 약속된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허황된 ‘가상’이 아닌, 치열하고 전투적인 현실의 경제표지인 것이다. 

‘거래 자체를 금지한다’는 식의 대응도 참으로 원초적이다. 그 보단 긱경제나 앱 스타들의 부의 독점과 같은 그림자를 경계하고, 디지털암흑 계층을 없애는 등 공유경제의 허와 실에 대한 고민이 먼저다. 그런 이해와 분석이 있을 때 암호화폐의 허와 실도 선명히 보이고, 잘못된 조작 원리도 합리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생긴다. 또한 암호화폐가 작동하는 분산기장과 공유경제의 문법을 우리 경제에 선하게 접목하는 방식도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이는 ‘모 아니면 도’ 라는 식의 성급한 행정행위로 될 일이 아니다.

암호화폐의 또 다른 키워드는 ‘해체’다. 근대 국민국가 이래 비로소 중앙 권력이 강제한 단일한 교환수단으로서 화폐가 힘을 갖기 시작했다. 암호화폐는 그런 중앙집권의 권위적 스키마를 전복하는 최초의 의미있는 현상이다. 이는 근대 이전, 물물교환과 다양한 교환수단으로 일관했던 인류의 태생적 본능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그럴진대, 국경과 지리적 공간을 초월한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진 자유로운 접속에 의한, 뿔뿔이 흩어져있는 부가가치를 추적하고 세금을 매긴다? 그런 건 불가능하며 그런 능력을 가진 정부는 없다. 또 암호화폐나 공유의 거래처럼 사이버 공간에서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일시적 공동체가 늘어난다면? 아마도 한 나라의 통합을 유지하는 단일 화폐와 단일한 경제권역, 집단적 연대감, 그런 것조차 회의적이다. 이런 ‘가 보지않은’ 길에 대한 정책 엘리뜨들의 선제적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암호화폐 투자자들 상당수가 ‘흙수저’ 탈출에 목맨 젊은이들이란 점도 예사롭지 않다. 이들 대부분은 ‘타인의 빈곤이 나의 부의 조건’이란 우리 사회 ‘부의 미래’에 절망한 세대다. 그렇다고 공유경제는 평등을 담보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존 롤스는 ‘세상의 가치있는 모든 것들이 내 집 앞에 우연히 솟은 우물과 같아서, 마땅히 인류의 공유자산’이라고 했다. 하지만 말처럼 되지 않는게 세상이다. 되레 공유경제가 왜곡되면 이번 암호화폐 사태에서 보듯, 디지털 약자보다 스마트한 투자자들에게 수익이 몰리면서 소득불균형을 심화시킨다. 

정부나 정책이 할 일은 여기에 있다. 일도양단 격이 아닌, 구조적 접근을 통해 그런 약탈과 착취, 불평등의 도식을 제어하고, 상호의존과 공존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공유 세상의 사회계약을 만드는게 그들의 할 일인 것이다. ‘거래 금지’나, ‘거래소 폐쇄’ 운운은 디지털 세상에 대한 면역력, 혹은 4차산업혁명 역량을 미리부터 약화시키는 극언일 뿐이다. 앞서 정 교수의 조언처럼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 거품이 올바른 방식으로 진정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야말로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 삼간 태워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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