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주말마다 고령의 어머니를 뵈러 요양병원을 찾은 지 2년이 넘었다. 고질적인 퇴행성 관절염으로 오랜 고통의 나날을 보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뇌경색 증세를 보인 것은 2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손발이 마비되고 언어 장애까지 겹쳤다. 이 갑작스런 사태에 온 가족은 그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침착하고 재빠른 대처로 응급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그나마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 꾸준히 이어진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로 손과 발의 기능은 차츰 호전되어 갔다. 그러나 이미 퇴행성 관절염으로 시달렸던 탓인지 한쪽 다리의 기능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양손의 기능은 회복되어 손수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 어머니와 가족들은 감사할 따름이다. 고령이시긴 하나 그 외에 별다른 질환이 없고 기억력도 또렷하시므로 여생을 그저 큰 고통 없이 보내시기만을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부터 이 네 글자가 담고 있는 불변의 진리 앞에 더욱 절실한 심정에 놓이게 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특히 인생의 마무리, 즉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상념 또한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선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이 유행했었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인생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기 위한 웰다잉(well-dying)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평화롭게 죽을 권리가 있지만 실상 그렇게 죽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100세를 넘긴 뒤 곡기(穀氣)를 끊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미국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이나 고승대덕(高僧大德)들처럼 그들에 버금가는 죽음을 맞기란 그리 쉽지 않다. 니어링처럼 현명함과 지혜를 가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준비가 없으면 실현이 어렵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사람들이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듯이 대부분 죽음에 대한 준비에는 소홀한 것 같다.

웰다잉은 기꺼이 죽음을 배우려 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한다. 웰다잉을 모르는 사람은 한 마디로 살았을 때도 사는 법이 올바르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죽음의 의미를 알면 세월을 아끼게 되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고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쓰여진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 온다’고 했다. 

2009년, 한국 가톨릭을 대표했던 인물이자 한국 사회의 큰 별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했다. 김 추기경은 노환으로 입원, 치료 중 향년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폐렴 합병증으로 폐기능이 떨어져 있었으나 최후의 순간까지 스스로 호흡했으며 선종 때까지 그다지 큰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당시 주치의가 밝힌 바 있다. 웰다잉으로, 아름다운 생의 마무리를 보여 준 것이다. 

기대수명이 갈수록 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이 되었을 때 노인인구는 더욱더 늘어나고 기대수명 또한 더 늘어날 것이다. 오래 살면서 건강하게 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을 경우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의식불명인 상태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어쩌면 자신의 생활습관이나 마음 다스리기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이왕이면 품위 있게 잘 죽는 것도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웰다잉의 참뜻을 한마디로,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이라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따라 인도 철학자 라즈니쉬가 남긴 말이 더욱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삶에서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절정이자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 존재는 죽음으로 자신을 새롭게 한다. … 삶은 다만 죽음을 향한 순례이기 때문에 죽음은 삶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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