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그 서사적 조건을 묻다’(10-5)

박경만 교수(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부).
박경만 교수(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부).

우린 아직 가보지 않은 길, 4차산업혁명의 두세 가지 조감도를 그려볼 수 있다. 기술자본주의가 극적으로 진화한 트랜스휴머니즘의 협곡이 그 첫째요, 인간이 존재의 주인이 되는 공동체적 유토피아, 즉 코이노니아(koinonia)의 대평원이 또 하나의 것이다. 그 둘이 변주되기에 따라선 협곡도 아니요, 대평원도 아닌 제3의 인간계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여기서 굳이 그 가치를 시시콜콜 비교하는 건 중요치 않다. 그 보단 그 과정에서 펼쳐질 미래 문명의 서사와 그 스토리 흐름, 그리고 구성이 보여주는 색다른 서사적 틀에 주목하고 싶다. 

분명 우리의 미래는 어떤 한 갈래로 진화될 것이다. 그 갈래가 어떠하든, 디지털혁명이 일군 문명의 끝이 어떠하든, 그 모습은 필히 일정한 패턴의 플롯을 반복할 것 같다. 구태여 이름 붙이자면, 미리 틀이 짜여진 ‘닫힌 문명’이라고 할까. 이미 4차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인구에 회자되던 시점부터 그 결말과 결론은 내려졌다. ‘혁명’이 몰고올 모든 과정과 결말이 치밀하게 계획되고, 주도면밀하게 예비된 듯한 문명론이 난무했다. 온갖 초현실적 기술이 만개하며, 인간의 삶과 기술이 변증적으로 우위를 다투는 세상…. 대충 그런 서술과 암시, 복선들이 4차산업혁명론의 결말을 예언했다. 결말이 예비된, 틀지워진 문명론인 셈이다. 곧 ‘닫힌 문명’ 서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하긴 어떤 역사적 서사이든, 으레 예비된 결말이 있고, 그 결말에 무난히 도달하기 위해 인간과 문화, 문명에 의한 서술적 계략들이 치밀하게 작동하게 마련이다. 인류사적 대격변이라할 4차산업혁명 담론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수단으로 한 효율성과, 시공간 너머의 호모테크노쿠스로 진화하는 플롯을 통해, 트랜스휴머니즘의 결말로 인도할 수도 있다. 반대로 문명을 도구삼는 ‘계략’을 통해 또 다른 초월적 인간성이 바탕이 된 테크노피아를 실현할 수도 있다. 이들은 그 결말이 어떠하든, 마치 액자처럼 유형화된 플롯에 의존하는 포뮬라(formula), 곧 어떤 ‘관점’이 지배한 문명 담론이라고 해야겠다. 

대체로 20세기 이전의 인류사가 그랬다. ‘닫힌 문명’의 서사를 반복하며, 변증적으로 진화해왔고, 늘 한 시대와 그 다음 시대가 선형적으로 이어졌다. 그 시대적 가치도 시대마다 달리 해석되고 분할되어왔다. 다른 말로 ‘통시적 문명사’의 연속이었다. 이는 분명 특별한 시각과 관점에서 보면 때론 생산적이고 긍정적일 수도 있다. 굳어있고 닫혀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변치 않는다는 뜻이며, 여일함과 불변함은 친숙감과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런 ‘포뮬라’한 문명은 특정한 한 시대의 참 가치가 무엇인지 몰입할 수 있고, 시대마다 획득한 미덕에 성실할 수도 있다. 수 천, 수 만년 이어져온 ‘문명의 꽃’도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포뮬라’한 문명, 닫힌 문명은 이제 21세기엔 그 유통기한이 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경험을 담거나, 그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데 그야말로 ‘능률적’일 수 없다. 그 짜여진 형식에 생명을 불어넣지 않으면, 더 이상의 비상은 물론, 혁명이나 개벽은 있을 수 없다. 언필칭 전무후무한 ‘혁명’을 내세운 4차산업혁명기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젠 ‘열린 문명’이다. 하찮고 단순한 동기, 모티프 하나로 운명적 결말을 이끌어내는 ‘열린 문명’이 미래의 서사가 되어야 한다. 그 스토리의 재료가 무엇인가는 중요치 않다. 오묘한 매트릭스의 기술문명이든, 아니면 로고스, 파토스를 아우른 유토피아적 완성세계이든 상관없다. 그것들이 엮어내는 도치와 역설, 스릴과 서스펜스가 끝내 종결과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구조, 그게 곧 ‘열린 문명’의 서사다. 

다시 미래의 ‘혁명’ 얘기로  돌아가자. 이젠 “4차산업혁명은 이렇다”’고 틀짓지 말자. 두려워하지도, 낙관하지도, 섣부르게 결론맺지도 말자. 대신에 어떤 알지 못할 무엇이 올 것인가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다른 말로 ‘무한한 카오스적 세계’다. 초현실이든, 비추얼 리얼리티이든, 그 경계를 벗어난 무한 지경을 상상해보자. 문명의 ‘결말’을 예견하기보단, 그 전의 ‘기승전’을 온갖 자유로운 영혼으로 장식해보자. 그 끝에서 어떤 반전이 올 것인가, 그건 인간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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