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기술자료 무단 요구, 이례적 사과문, 공정위도 “고발 없이 과징금만”

 

볼보그룹코리아가 하청업체들에게 절차 규정을 무시하고 기술 자료를 요구했던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볼보그룹코리아는 행정절차상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고 밝혀, 그동안 공정위의 제재를 받고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기에 급급했던 일부 기업들과는 대조적인 대응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시종일관 변명과 발뺌에 바빴던 최근의 BMW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공정위는 9일 하도급업체로부터 기술자료를 받으면서 하도급법에서 정한 기술자료 요청서면을 주지 않은 볼보그룹코리아(대표 양성모)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정액과징금 2000만원을 부과했다. 볼보그룹코리아는 굴삭기를 생산하는 볼보의 한국법인으로 국내 굴삭기 시장의 2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볼보그룹코리아는 2015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굴삭기 부품제작을 하도급업체에 위탁해 납품받는 과정에서 업체 10곳에 부품 제조를 위한 조립도·상세도·설치도 등 도면 총 226건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비밀유지방법, 권리귀속관계, 대가 및 지급방법 등을 정한 서면을 해당 업체에 주지 않았다.

현행 하도급법 123은 원사업자(대기업)는 정당한 사유 외에는 수급사업자(중소기업)에 기술자료를 요구해서는 안 되고,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는 요구 목적, 비밀유지 사항 등에 대해 미리 협의한 뒤 그 내용을 적은 서면을 수급사업자에게 주도록 하고 있다.

볼보가 하도급업체로부터 도면을 요청한 것은 납품받은 부품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검수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박재걸 공정위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서면 제공 의무는 혹시라도 있을 중소기업의 기술자료 유용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보호 장치를 준수하지 않으면 바로 기술 유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어 과징금까지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볼보그룹코리아는 이에 대해 행정적 절차상의 미흡에 대해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쓰고 협력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볼보는 공식입장을 통해 자료 요청 절차를 위반했지만 자료 요구의 정당성은 인정받은 점과 도면의 실제 사용 목적, 공정위가 중소기업 기술자료 유용에 엄격한 법집행을 하는데도 비교적 가벼운 제재만 내린 이유 등을 밝혔다. 또 대기업들의 통상적인 중소기업 기술자료 유용행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는 국내기업들이 공정위의 제재나 좋지 않은 사건이 드러나면 허위 사실이라며 반박자료를 내거나 불복소송을 제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특히 올해 여름 차량 화재 사고로 화제가 됐던 BMW코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BMW 520d 화재는 2015년부터 간헐적으로 일어났지만 BMW코리아는 그 동안 정확한 설명이나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급기야 금년 들어서 화재사고가 빈발하고 사회문제로 번지면서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은 뒤늦게 자발적 리콜과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모습이겠지만, 적발 시 이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이 오히려 좋은 본보기가 됐다는 평이다.

 

이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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