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인간 이성의 임계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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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지구촌 경제의 내일에 대한 묵시록과 같은 사건이었다. 2019년의 사회와 경제 역시 10여 년 전 금융위기의 여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무관하지 않다기보단, 그 강력한 인장력의 반경에 여전히 포획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애초 물질에 대한 사용가치의 남용이나, 유효수요 이상의 과시적 소유인 기호가치의 과잉, 다시 말해 재화와 화폐라는 기초자산 소유의 과잉은 필히 파국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독점자본주의의 극단적 모순인 제국주의가 그러했고, 세계 공황이 그러했으며, 두 차례의 대량 살상 세계대전과,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의 돌출도 그런 파국의 결과다.

‘2008년’은 역설적으로 그런 파국을 어떻게든 교묘하게, 아니 더욱 탐욕스런 방식으로 피하려다 생겨난 더 큰 재앙이다. 월스트리트를 구심점으로 한 디지털 공간의 가상금융족들은 파국을 피한답시고 오히려 더 큰 욕망을 부채질한 것이다. 온갖 파생상품이 실어나르는 ‘위험’(리스크)을 없애기보단, 오히려 이를 자원으로 삼아 증식하고 분산시키며 ‘파국’을 사멸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작은 파국’을 사멸시키느라, 더욱 ‘큰 파국’을 초래할 ‘욕망’에 젖어, 자본주의와 세계경제의 종말에 견줄만한 재앙을 부르고 말았다. 

당시 탐욕스런 투자자들은 다른 투자자들의 경험과 투자 히스토리로부터 학습능력을 키우고, 매도, 매수, 관망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비한 파생상품을 고도화시켰다. 위험을 생산요소로 삼아 가공되는 상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스와프와 옵션 거래를 재조합한 스왑션, 옵션거래를 다시 옵션화한 복합옵션 등이 그런 것들이었다. 이들은 확률이론과 양자역학적 측정, 이를 총합한 ‘세포자동(自動)자(CA. Cellular Automata)’ 시뮬레이션으로 ‘위험’을 증식시키며 시장 도처에 살포했다. 마치 죽지않는 좀비의 확산이나 무성생식을 무한 반복하는 아메바의 분열과 같았다.

이렇게 증식된 위험은 파생상품을 파생시킨 기초자산(실물과 주식 등) 시장으로 파급되었고, 그 불안정성은 또 다시 증식하여 파생상품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증폭되면서 결국 어떤 변곡점으로 집중되었다. 그 결과 특정한 지점(노드, 투자집단이나 계기)에선 폭발적으로 위험이 분출될 수 있는 ‘우발성’이 잠복되어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우발성이 현실화되고, 그것이 과잉 증폭되면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디지털공간에서 급격히 임계점에 도달했다. 마침내 2008년 9월경 그 임계점을 초월하는 순간, 그 폭발적인 우발성은 네트워크를 타고 모든 가상의 금융상품과 행위에 전파되었다. 결국 디지털금융시장은 급격한 파고에 휘말리면서 절멸 상태의 대(大)파국의 나락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하이데거는 테크놀로지에 의해 주도되는 현대를 ‘최고 위험’의 시대라고 불렀다. 위험의 증폭을 통해 번영을 구가하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2008’은 ‘최고의 위험’을 도구로 한 욕망, 그것의 ‘죽음’을 허용하지 않은 결과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과 세계 사이에 맺는 ‘관계’의 자연적 상태가 곧 ‘아우라’일진대, 그러한 아우라의 쇠락은 공동체적 가치의 붕괴와 지혜의 소멸을 가져온다. 그렇듯이 가상금융족들은 숱한 복제를 통해 실재(實在)아닌 실재의 것들을 무수히 획득해낼 정도로 ‘탈아우라’에 능했고, 교활했다. 그러다 결국 패가망신했으니, 이는 자연의 아우라가 아닌, 욕망의 아우라를 숭배한 대가였다. 가상공간과 하이퍼텍스트가 극성할 디지털혁명기가 다가올수록, ‘2008’의 데자뷔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박경만<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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