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VC와 아크릴 가공업체인 경기도 포천의 A사는 2년 전 공업용 에폭시를 대체할 만한 유럽산 충전액을 수입, 판매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품질은 좋았지만 가격이 너무나 비싸 잘 팔리지 않고 재고만 쌓여갔다.
A사는 고민 끝에 전략을 바꿨다. 완제품 라인업(카테고리)을 4개로 구분하여, 한때 수입 충전액 바이어(buyer)였던 업체 5곳에 문제의 충전액을 공급하고, 그것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도록 했다. 대신에 자사는 유통을 전담하되 그 마진을 공동 배분하기로 했다. 그 결과 자사는 물론 참여 업체들 모두 적정한 수익과 수지를 맞출 수 있었다.
이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방향의 생산재 흐름이 아니라, 동심원 반경의 생산요소와 단계별 부가가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수평분업과는 다르다. 자원의 효율적이고 공정한 배분을 통한 공정경제의 초보적 실현이라고 하겠다. A사의 경우와 형태와 방식은 다르지만, 이처럼 고전적 미시경제 매뉴얼과는 전혀 다른 관행을 최근 제조업계 일각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생산이 그렇다면 소비 또한 그런 공정한 공존의 원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가능하다. SNS나 디지털네트워크가 발달할수록 온라인에서 공유와 공존을 도모하는 소비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 이 경우 네트워크에서 참여자들의 소비 행태나 행동은 항상 흔적으로 남는다.
흔적은 다시 네트워크 상에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이는 추후 행위자(소비자)의 ‘가치’로 매겨진다. 이른바 평판유동성(reputation currency)이라는 전혀 새로운 통화개념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평판 유동성’은 곧 평판이 마치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소비 과정에서 좋은 평판, 곧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려 애쓰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협력이 습관처럼 되고, 소유에 대한 욕망이 공유라는 적정한 요구로 수습되곤 한다. 이런 경험들은 사람들 간에도 공동체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고, 과잉소비를 억제하며,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생산 부문도 마찬가지다. 앞서 A사와 다른 5곳의 업체들은 상호 신뢰라는 가치가 없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협업, 혹은 협력적 생산을 할 수 없다. ‘신뢰’를 바탕으로 비싸게 들여온 유럽산 충전액을 적정 가격으로 고루 소비하며, 그 결과물로부터 획득된 최종 마진을 고르게 나눠가질 수 있다. 독점적인 과도한 이윤을 욕심내기보단, 조금 덜 만족스런 이익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됨에 감사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라는 가치를 통해 자원이 공급, 배분되는 운영체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경제가 화폐와 자본과 같은 ‘물질 자본’으로 굴러갔다면, 21세기 공유경제는 이같은 ‘가치 자본’으로 작동한다. 이같은 협력적 생산과 소비가 21세기에 구현해야 할 공정경제의 테마다.

다만 해결해야 할 치명적 과제가 있다. 공유네트워크를 독점적으로 조작하는 중심적 존재의 횡포가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우버, 에어비앤비, 집카(Zipcar, 자동차 공유), 지록(Zirok, 중고품 임대) 등이 그런 사례다. 이들은 허드렛일에 목매거나, 잡수입으로 연명하며 늘 실직의 불안 속에 저임금으로 사는 노동자(프리캐리아트, prcariat)를 양산한다. 반면에 이들 독점적 애그리게이터 기업은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하곤 한다. 진정한 21세기 공정경제의 틀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도 이런 공유경제의 역기능을 없애는 것이 숙제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것이 이른바 ‘플랫폼 조합주의’다. 공정경제를 위한 협력적 경제를 강조했던 하버드대의 요하이 벤클러는 “(참여자, 경제주체들이) 네트워크상에서 협력, 결정, 책임이라는 요구사항을 제3자의 개입없이 스스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이를 정의했다. 
단적으로 수많은 저임금 기사들을 착취하는 ‘우버’ 기업과 같은 독점적 플랫폼 소유나 지배구조를 없애는 것이다. 대신에 모든 참여자(사용자)가 공동 소유하는 민주적인 구조로 바꾸되, 민주적 통제와 감독이 가능한 ‘조합’이 상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가 플랫폼을 구축, 운영하고 그 수익이 지역경제로 재순환되는 모델을 떠올리기도 한다. 실제로 ‘비앤비’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등장한 ‘무니비앤비’(Munibnb), ‘올비앤비(Allbnb)’ 등이 그것과 유사한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또 다른 방식은 사용자 공유를 통해 그들이 직접 조합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조합 구성원인 사용자들이 공유자이자 운영자가 되고, 모든 참여자들의 이익을 적절히 반영하는 시스템을 디자인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이런 발상의 조합주의는 싹이 틀까 말까한 단계다. 그럼에도 디지털 공간의 모순과 왜곡을 극복하고, 참된 공유를 통한 공정경제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강력히 추천되고 있다.

다시 본래의 문제인 ‘공정’의 해석으로 돌아가보자. 20세기 경제는 그야말로 ‘불공정’한 경제이자 봉건적 지배구도의 자본주의 극성기라고 할 수 있다. 맹목적인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라는, 반(反)공동체적이고 몰가치적인 독선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런 공간에선 착취와 폭력적 자본의 횡포, 수단을 불사한 비인간적 경쟁이 너무나 당연시되었다.
그렇기에 21세기 디지털경제 국면에선 더욱 ‘공정’한 경제원리가 순환하고, ‘디지털’의 순기능만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많은 이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 결정적 동인(動因)은 역시 ‘(경제주체) 상호 간의 신뢰’다. 생산, 소비활동에 참여하는 경제 주체 모두에게,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존하게 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경제행위의 작동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돈이면 다’가 아니라, ‘인간’을 정점으로 둔 ‘가치 자본’이 새로운 유동성(currency)으로 순환하게 되는 ‘가치경제’가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유경제의 고전이라 할 <위 제너레이션>을 펴낸 옥스퍼드대 레이첼 보츠먼의 분석은 눈여겨볼 만 하다. 그는 장차 실현될 공정경제의 공정한 툴을 예상하면서, 4가지 소비 측면의 세기적 진화를 제시했다. 20세기의 ‘신용’은 21세기에선 ‘평판’으로, 20세기의 ‘광고’는 21세기 ‘공지’로, 20세기 ‘개별적 소유’가 21세기 ‘공동 접근’으로, 20세기 ‘과잉소비’는 21세기 ‘협력적 소비’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희망사항이 아니라, ‘공정경제’라는 제2의 계몽시대를 위한 의무사항을 나열한 것이다.

박경만<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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