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공정경제’(3)

<국부론>이 우파의 전범(典範)이라곤 하지만, 이는 정작 아담 스미스가 ‘어쩌다 쓴 책’일뿐, 그의 필생의 노작은 <도덕감정론>이다. 이 책에서 스미스는 ‘선’(善)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도덕관념을 조준하며, 그 곁가지의 경제․사회적 사유를 하다보니 <국부론>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설까. <국부론>에서 그는 “정경유착과 담합을 일삼는 상공업자들의 이윤추구는 악”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사업하는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으레 음모와 담합을 일삼는다”고 경멸했다. 그러면 스미스가 정작 <국부론>에서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이 책을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주제’는 흔히 알려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원리 작동이 아니다. 오로지 ‘정통 자본주의’의 발흥,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돈놓고 돈먹는 식의 중상주의, 천민 상업주의를 경계하고, 승자 독식의 무한경쟁을 극도로 혐오하며, 대신에 선의의 ‘공정한 경쟁’을 찬미했다. 

그렇다면 ‘공정한 경쟁’이란 어떤 것일까.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다시 ‘공정’에 관한 변증적 개념이 중요해진다. 존 롤즈의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는 이에 대한 비교적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타고날 때부터 획득한 능력차나 개인의 운(運)과 같은 것을 그는 일단 ‘공유자산(common asset)’으로 전제하되, 그런 차이로 인한 ‘절차’상의 제약을 ‘결과’의 조정을 통해서 보완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사회 전체의 자원 중 더 많은 몫이 사회적 약자, 즉 최소 수혜자에 대한 보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다. 평등한 자유원칙이나 기회균등의 원칙에 의해 출발선에서는 ‘공정함’(fairness)의 원리가 적용되고, 최소 수혜자(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우선 고려라는 차등적 원칙에 의해 종착선(결승점.finish line)에선 ‘공평함’(equity)을 실현한다는 입장이다.
공동체주의자라고 할 하버드대 마이클 셀든은 이에 대해 ‘불공정한 평등’으로 깎아내리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필자로선 롤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예를 들어 자생적 시장력이 뒷받침된 시장거래는 불공정한 것이 아니며, 독점도 아니다. 그러나 특별한 기술 개발이나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이 없이, 여러 기업들을 하나로 합병하여 독점적 시장력을 행사하는 건 불공정하다. 소비자의 대체성 거래 기회, 즉 선택지를 인위적으로 줄여버린 결과도 된다. 합병에 가담하지 않은 기업들을 ‘약자’로 추락시킴으로써 출발선의 절차적 ‘공정함’을 어기고, 종착선의 ‘공평함’도 상실한 불공정 경쟁이다.
다만 합병이 유발한 시너지로 인해 생산 효율성, 품질 개선, 원가 절감으로 시장력을 강화하고, 이로 인한 독점적 가격이나 가격인상의 역효과를 상쇄한다면, 일단 소비자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다. 경쟁을 줄이면서 얻은 효과로서, 여전히 절차적 정의엔 맞지 않지만, 결과에 있어서 정의를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경쟁의 충분조건은 못되어도 필요조건은 갖춘 셈이다.
그러나 가격 담합에 의한 독점적 시장력 획득은 다르다. 겉보기엔 여러 기업이 참여하나, 거래조건이 모두 똑같기 때문에 독점이나 다름없고, 합병과도 달리 시너지 없이 기업들의 부당한 시장력만 강화한다. 출발선에서의 절차적 공정함도, 종착선에서의 결과적 공평함도 상실한 전형적인 불공정 경쟁이다. 
경쟁을 전략적으로 없애기 위한 ‘진입 장벽’도 시장 경쟁의 공정성을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다. 꼭 팔아야 하는 제품을 위해, 자사가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제품을 끼워서 팔거나, 원료공급 독점을 통해 시장 차단을 시도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오로지 시장 독점을 위한 합병이나, 가격담합, 진입장벽을 통한 시장 장악 등은 앞서 스미스가 혐오한, ‘음모와 담합을 일삼는 상공업자들에 의한 승자 독식의 무한 경쟁’에 다름 아니다.

결국 공정경쟁은 공정과 공평, 그 교집합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 공정, 즉 절차주의적 정의 라고 할 공적 정당성(rightness)을 바탕으로 하되, 공평 즉 공적 형평(equity)이 실현되는 결과주의적 정의가 종국에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정’만으론 자연적으로 생득(生得)한  차이 등을 무시한 형식적 평등에 그칠 우려가 있으나, ‘공평’은 이를 감안한 실질적 평등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자와 약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 등 산업생태계에 고루 적용될 ‘룰’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시장의 왜곡과 소득 양극화, 부정부패, 회계부정, 가격조작, 내부자 거래, 비자금 등의 난맥상이 판을 친다. 이는 <국부론>을 오독(誤讀)하고, 스미스가 꿈꿨던 것과는 다른 사이비 자본주의에 중독된 결과라고 하겠다. 새삼스레 근세 아담 스미스를 소환하며, ‘공정경쟁’의 의미를 곱씹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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