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고뇌...집행유예 선고를 내린 까닭

수원지방법원 청사 사진제공=수원지법
수원지방법원 청사 사진제공=수원지법

 

긴 병에 효자없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가 늘 병을 앓고 있으면 자식이 한결같이 효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반대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자식이 오랫동안 병을 앓는다면 그를 지켜주는 부모도 인간이라 지치기 마련이다. 무려 40여년간 자식의 병을 힘겹게 뒷바라지 하던 한 노모가

불행한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슬픈 범죄의 뒤에는 판사의 인간지정이 읽힌다. 

40여년간 자폐판정을 받은 아들을 돌보다 살해한 60대 모친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고 한다.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송승용)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67)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4월 2일 밝혔다.

A 씨의 아들 B씨(41)는 3세 때 자폐 판정을 받은 뒤 기초적 수준의 의사소통만 가능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상태에서 폭력성향이 심해졌고, 20세가 될 무렵에는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B 씨는 난폭한 성향으로 인해 퇴원을 권유받거나 입원 연장을 거부당하는 일이 빈번해 20여년간 정신병원 10여 곳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던 중 A 씨는 지난해 11월 27일 오후 병원에서 아들 B 씨가 계속 크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등 소란을 피우자 간호사에게 진정제 투약을 요청해 B 씨를 잠재웠다. A 씨는 날이 갈수록 악화하는 B 씨 상태에 낙담하고 다시 입원을 받아줄 병원이 없으리란 불안감, 자신의 기력이 쇠해 더는 간호가 불가능하리란 절망감 등에 사로잡혀 이튿날 새벽 병실에서 B 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거의 40년 동안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양육하면서 헌신적으로 보살펴 부모의 의무를 다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스스로 자식을 살해했다는 기억과 그에 대한 죄책감이 어떤 형벌보다 무거운 형벌이라 볼 여지도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이번 사건의 책임이 오롯이 피고인에게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법률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각종 규정을 두고 있으나, 이 사건 기록상 (국가나 지자체의) 충분한 보호나 지원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런 사정이 피고인의 극단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점을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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