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전세대출 전년 동월비 증가율 2개월째 40% 밑돌아

국내 주요 은행 전세자금대출 증가세가 계속해서 둔화하고 있다. 전셋값이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대출 수요도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전세가 여전히 국민들의 주요 보금자리 방식이긴 하지만 전세가율도 떨어지고 있어 향후 전세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을 모은다.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지난달 말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67조1천470억원이다. 이는 2월 말보다 2.0%(1조2천914억원) 늘어난 규모다.전세자금대출의 전월 대비 증가율은 2017년 5월의 1.9% 이후 23개월 만에 가장 낮다. 작년 1∼3월 평균 증가율 3.5%, 작년 10∼12월 평균 증가율 2.8%보다 많이 둔화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증가속도가 느려진 것이 더 눈에 띈다. 지난달 전세자금대출은 작년 3월보다 35.9%(17조7천380억원) 증가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2월에 1년 만에 40%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3월에 더 둔화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지난해 10월 43.0%에서 11월 42.3%로 하락하기 시작해 올해 3월까지 5개월째 낮아졌다. 작년 말부터 시작한 전셋값 하락세가 자연히 전세자금대출 증가세 둔화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이달 8일 기준으로 전주보다 0.06% 떨어져 22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국민은행 부동산 플랫폼 `KB부동산 리브온`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은 작년 11월에 59.6%를 기록해 60% 벽이 무너졌다. 이어 작년 12월 59.4%, 올해 1월 59.8%, 2월 59.6%, 지난달 59.4%로 계속 60%를 밑돌았다. 

전세 거래 건수도 감소세다. 서울시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를 보면 3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신고 건수는 1만6천920건으로 전년 동월에 견줘 5.1%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세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었다"며 "전세자금대출 신규취급액이 지난해 12월과 비교해 3월에 급감했다"고 말했다.

한편 9ㆍ13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격 약세가 지속되면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 역시 하락세가 뚜렷하다. 특히 지난해 매매와 전세 가격 차이가 비교적 적었던 서울 강북과 수도권 일부지역까지도 전세가율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양쪽의 시세차익을 이용하는 소위 ‘갭투자’가 설 곳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국가통계포털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3월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59%를 기록했다. 2013년 3월(58.9%) 이후 6년 만의 최저치다. 9ㆍ13 대책 이후 내림세가 뚜렷해지면서 올해 1월에는 50%대로 내려갔고, 이후에도 3개월 연속 떨어지며 반등 기미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구별로는 용산구가 45%를 기록하며 전체 25개구 가운데 가장 낮은 전세가율을 기록했다. 이어 강남구(47.5%), 송파구(50%), 서초구(53.2%) 등이 뒤를 이었다. 

하락세만 보면 강북 지역이 더 눈에 띈다.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갭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노ㆍ도ㆍ강’(노원ㆍ도봉ㆍ강북구) 지역의 경우 1년 사이 전세가율이 가장 많이 떨어진 곳으로 꼽힌다. 지난달말 노원의 전세가율은 59.8% 작년 3월(70.1%)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반면 헬리오시티 입주 등으로 ‘물량 폭탄’에 시달린 송파의 경우 같은 기간 55.7%에서 50%를 기록하며 강북에 비해서는 낙폭이 크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2015년 10월 처음으로 70%를 넘어선 이후 2017년 말까지 계속 70%대를 유지해왔다. 당시 강북과 일부 수도권 지역의 경우 80~90%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미친 전셋값’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셋값이 올라가면서 전세 보증금을 끼고 적은 목돈으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갭투자도 늘어났다. 

하지만 9ㆍ13 대책 이후 다주택자 대출이 막히고 매매가격에서도 조정이 계속되면서 갭투자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인중개업계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투기수요 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도 억제하고 있다”면서 “전세가율이 내려가는 집값 조정기에는 갭투자가 주목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입주 물량 증가도 전세가율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서울 입주 물량은 1만2022가구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 물량(3678가구)보다 4배 정도 늘어났다. 한편 전세가율 하락이 내년까지 지속될 경우 역전세 현상이 심화하면서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집주인들의 급매물들이 늘어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때 전세시대가 종말을 맞을 것이란 데 별 이견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저금리 기조가 보편화됐던 2014~2016년께다. 예금금리가 1%대로 은행에 돈을 맡겨놔봤자 별 재미를 못보자, 집주인들이 예금을 해제하거나 추가 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월세를 받기 시작했다. 대출이자를 내고도 이익이 남았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월세로 살라고 권했다. 2016년 1월13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금리가 올라갈 일도 없는데 누가 전세를 놓겠느냐”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맡기도 했다. 반전세 형태였던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공급정책을 강조하며 던진 이 말은 사실상 전세시대 종말 선언과도 같아 서민들을 아프게 했다. 

그러면서 전세는 다시 오름새를 보였다. 새 아파트 물량이 증가했고 갭투자 효과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전세가 늘어났다고 마냥 좋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역전세난을 넘어서 깡통전세를 우려해야 할 판이다. 전세는 여전히 서민들의 중요한 주거수단이다. 전세가는 앞으로도 계속 하락새를 기록할 전망이다.

 

최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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