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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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상가이자 승려인 ‘아잔 브라흐마’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고 나서 스스로 삭발한 뒤 밀림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위대한 스승 ‘아잔 차’의 제자가 된다. 오늘날 불교가 탄생시킨 중요한 스승들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아잔 브라흐마는 특유의 유머와 통찰력 넘치는 법문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108개의 이야기로 엮은 영혼의 안내서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는 이런 일화가 담겨 있다. 가난뱅이 숲 속 수행승이었던 아잔 브라흐마가 주지 스님과 함께 절을 짓게 되었다. 가난했으므로 인부도 없이 모든 공사를 몸소 해야만 했다. 먼저 벽돌을 쌓아 법당을 짓기 시작했다. 시멘트를 반죽해 한 덩어리 바른 뒤 그 위에 벽돌을 얹고 상하좌우를 두드리며 꼼꼼하게 수평을 맞추었다. 비록 초보였지만 명상 수행을 하듯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완벽한 형태의 벽을 쌓아올리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첫 번째 벽을 완성하고 보니 중간에 있는 벽돌 두 장이 어긋나게 놓여 있었다. 벽 전체를 망쳐 버린 벽돌 두 장이 마음에 걸린 그는, 그 벽을 허물어 다시 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주지 스님께 제안했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을 다 지은 지 서너 달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절에 온 어느 방문객이 아잔 브라흐마와 거닐다가 그만 그 벽을 보고야 말았다. 그 남자는 무심코 말했다. “매우 아름다운 벽이군요.” 브라흐마가 놀라서 물었다. “선생,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가요? 벽 전체를 망쳐 놓은 저 잘못된 벽돌 두 장이 보이지 않나요?” 

아잔 브라흐마의 물음에 그가 답했다. “물론 잘못 얹힌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더 없이 훌륭하게 쌓아올려진 998개의 벽돌들도 보입니다.” 그의 답변은, 그 벽에 대한 아잔 브라흐마의 시각을, 나아가 자신과 삶의 많은 측면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을 근본에서부터 바꿔 놓았다. 그때부터 아잔 브라흐마는 온전한 벽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화를 접한 뒤 막상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갈수록 메말라 가는 정서로 가득 찬 느낌을 받는다. 그 메마름에 갇혀, 많은 사람들이 오직 ‘잘못 얹힌 두 장의 벽돌’ 만을 발견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두 장의 잘못 된 벽돌만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져들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도 앞선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그 잘못된 벽돌보다 완벽하게 쌓아올려진 벽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잘못된 것의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 사방에는 멋지게 쌓아올려진 수많은 벽돌들이 촘촘히 짜여져 있다. 일단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의 감성은 긍정으로 돌아서게 된다. 우선 자기 자신과의 평화를 누릴 수 있고, 우리가 지닌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상대방과 화합의 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가 가족이나 또는 주변 사람들과 잦은 마찰을 빚거나, 세상과의 불화로 삐걱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훌륭하게 쌓아진 998개의 벽돌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잘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자신을 선택한 뒤 자기 안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보고, 몇몇의 단점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조언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그저 남들과 비교만 해 가며, 무작정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삶에만 몰입하면 끝내 만족을 못한 채 삶을 접어버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지나친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불러일으키고 만족은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더욱 새롭게 와 닿는다. 갈수록 낮아지는 우리의 행복지수를 걱정하는 일보다 ‘어긋난 벽돌 두 장’ 대신 ‘매우 아름다운 벽’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더 빛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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