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실수는 누구나 한다! ‘재원’은 여성에게만 쓴다. ‘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가 재원才媛이다. 남자에 해당하는 말은 재자才子이지만 잘 쓰이지 않는다.

여성 형태로만 존재하는 단어가 몇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게 ‘모국母國/모국어'다. 할아버지/조상의 땅 ‘조국祖國’을 쓸지언정 우리말에 ‘부국’은 없다. ‘태극 낭자’할 때 娘子도 그렇다. 원래 처녀/처자를 높여 부르던 말이다.

‘복부인’, ‘김 여사’는 이제 쓰지 않는다. 복부인은 부동산 투기를 하는 가정주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었지만, 비속어를 넘어 양성 평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김 여사 역시 운전이 서툰 여성을 얕잡아 희화화하는 낱말이다. 신문에서도 몇 년전부터 자취를 감췄다.

장미란 선수처럼 기골이 크거나, 기질이 강하고 통 큰 여성을 가리켜 ‘여장부女丈夫’라 일컫곤 하는데 큰 틀에서 성 평등에 반反하는 말이다. (大)丈夫라는 남성을 이미 전제, 상정해 ‘남성처럼/남성 못지않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친구/후배/선배 등의 아내를 지칭할 때 농담조로, 혹은 진심으로 높임의 의미를 담아 ‘어부인御夫人’하곤 한다. 이건 일본말이다. 우리말에선 御가 임금을 뜻하나, 일본어에서는 낱자의 앞에 붙여 존경이나 겸양의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접사接詞로 쓰인다.

신문 타이틀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아니다.’
(1930년대 나치 정권의 괴벨스 선전장관은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 정부가 연주해야 한다”와 관련)

웬 난데없이 피아노? 생뚱맞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분은 이렇게 쓰지 않았다. 아마도 몹시 기분이 언짢았을 것이다.

괴벨스가 한 말, “언론과 방송은 정권의 피아노이며, 연주자는 당연히 집권자가 돼야 한다”를 상기시키며 그래선 위험하다는 주장을 펴려하는데, 이 맥락을 단절시킨 채 ‘피아노’만 달랑 떼어내면 타이틀이 우스꽝스러워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피아노는 ‘되는 대상’으로서 쓰인 것이고, 어디까지나 연주자가 전제될 때만 의미 있는 비유다. (언론은 정부의 손 안의 있는) ‘피아노가 아니다’라고 쓰려면 피아노 자체가 누구나 알 만한 강력하고 의심 없는 상징성을 갖춰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니 괴이쩍은 것이다.

그러니, 이쯤 되면 편집자의 폭력이다.

‘손 안의 피아노’ 자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사람 손이 그렇게 큰가? 아니면 장난감 피아노? 그게 아니라 비유라고? 그러려면 피아노 자체가 어떤 특징을 단단히 지녀, 부분이나 전체를 그려내야 한다.

빵⟶식량, 강태공⟶낚시꾼처럼 일부가 전체를 대신할 땐, 제유법(提喩法). 요람⟶탄생/시작, 무덤⟶죽음처럼 그 자체가 1대1 대응일 때는 환유법(換喩法)식으로 말이다. 아니면, 아예 추상명사 ‘행복/평화’ 등이 와야 적당하다. “내 손 안의 평화” “손 안의 작은 행복” 이러면 가능하다.

KBS 강성곤 아나운서는 1985년 KBS입사,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위원, 미디어언어연구소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건국대,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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