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모 정당 대표가 당 워크숍에서, 모국을 뜻하는 조국과 후보자 조국 씨가 헛갈린다고 曺國은 [조:국], 祖國은 [조국]으로 발음하겠다며 연설문을 읽었다고 한다.

실망이다. 마음대로 그렇게 해도 되는가? 한국어 인명/지명 발음도 다 소정의 원칙과 규정이 있다. 법과 제도를 엄정히 지켜야 한다는 분이 그러면 안 된다.

긴 발음 [조:국]의 주인공은 바로 趙氏다. 2019년 6월 현재, 한국 성씨 7위인 大姓이다. 50여 본관 중 풍양豐壤 조/한양漢陽 조/함안咸安 조씨가 주류다. 조:광조/대왕대비 조:씨/조:소앙/조:병옥/조:지훈/조:미령/조:정래/조:영래/조:순/조:용필/조:오련/조:치훈 등.

曺氏는 [조국]으로 짧게 소리 난다. 조국祖國과 발음이 같다. 순위 27위로 창녕昌寧 조씨가 압도적이며 10본 정도가 있다. 조식/조만식/조봉암/조훈현/조혜정/조미미/조성모/조승우 등.

참고로, 중국의 삼국시대 때 대결을 펼친 조조는 曹操고, 조자룡은 趙子龍이다. 곧 조조는 짧고 조:자룡은 길다. 曺와 曹는 姓 조/무리 조, 같은 글자로 중국 인명은 曹, 한국 사람은 曺를 쓰는 게 보통이다.

Stephen M. Walt가 스테판 월트?

**이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는 자기 이름이 한국/일본, 이 두 나라에서만 유독 ‘스테판’으로 똑같이 잘못 불리는 게 신기할 거다. Stephen M. Walt. 잘 보면, 아니 그렇게 주의 깊게 안 봐도 ‘스테판’은 거리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왜 J같은 거대 신문사가 이러고 있을까. 관습과 타성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에 촉을 곧추 세워야 할 언론이 언어 저널리즘에 놀랄 만큼 무신경한 탓이다.

Stephen은 미국·영국 모두 [stí:vən]으로 소리난다. 곧, 우리 표기로는 ‘스티븐’이다. ‘스테판’은 Stefan이 따로 있다. 미국식은 [a]에 액센트가 있고, 영국식은 [e]를 강하게 한다.

미국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며 <스와니 강> <금발의 제니> <올드 블랙 조> 등의 명곡을 남긴 Stephen Foster(1826–1864)라는 작곡가가 있다. 이이를 우리는 오랫동안 ‘스테판 포스터’라고 허투루 부르고 표기했다. 그 관성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우리 국민의 외래어 표기와 발음을 관찰해보면, 장년층은 아직도 일본식 내지는 구습에 정체되어 있고, 젊은 층은 지나치게 원어 발음을 따르거나, 표기 방식을 생략/삭제시키는 등 자의적 특성을 띠는 듯하다. 이 둘을 아우르는 조화와 균형, 절충이 현재 외래어를 다루는 원칙이요 정신이다.

신문 속 한 문장

“아무 생각없는 강아지도 슬픈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꽃들은 일제히 그에게 눈을 돌렸으며, 시냇물도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에게’의 쓰임 문제다. ‘~에게’는 어떤 행동이 미치는 대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행동을 일으키는 대상임을 나타내기도 하는 묘한 조사다. 상반되는 기능을 한 몸에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를 잘 살려야 하는 주의가 따른다.

이 글은 저명한 문학평론가의 것이다. 분명 멋지다. 그러나 토를 달자면, 여기서 바로 ‘~에게’를 살짝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맥은 사슴/바람/석양 등 자연들과 강아지까지, 하나같이 한 사람을 위해 친화적으로 변화하는 순간들을 다룬다. 문제는 꽃이다.

“꽃이 그에게 얼굴을 돌리다”는 약간 어색하다. ‘얼굴을 돌리다’는 외면의 의미도 담고 있어서다. ‘그에게’가 막아주지 않느냐고? 앞서 말했듯, ‘~에게’는 ‘~을(를)일으키는 대상’의 뜻도 지닌다. 영어로 따지면 탈격(奪格, ablative)의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 된다.

‘에게’는 다시 말해 ‘에게로’와 ‘에게서’를 둘 다 품고 있기에, 이를 명확히 해주는 게 독해에 한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로’라는 작은 조사 하나 덧붙이면 뿌옇던 게 맑아진다. ‘그에게로’로 하면 명료하다.

KBS 강성곤 아나운서는 1985년 KBS입사,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위원, 미디어언어연구소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건국대,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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