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글쓰기 관련 책들을 여전히 뒤적거리고 있다. 마음에 맺히는 키워드를 최근 발견했다.

‘혜경蹊徑’과 ‘요령要領’이다. 혜蹊는 지름길/발자국, 경徑도 질러가는 길/좁은 길. 어쨌든 길이다. 지금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내 좌표는 어디 쯤이고 목표는 무엇인가? 곧 흐름을 단단히 잡고 방향을 잃지 말라는 얘기다.

요령要領은 으뜸이 되는 줄거리란 뜻이다. 요는 원래 ‘모으다/합치다’의 의미고, 령의 뜻은 ‘깨닫다/알아차리다’이다. 중요重要한 것, 다시 말해 으뜸이 되는 요긴한 것을 찾으려면 우선 뭔가 모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러고 나서 알맹이를 추려내는 눈과 감각을 키우자는 말이다. '무엇을 갖고 임할 것인가'가 골자다.

‘혜경과 요령’. 누가 한 말이냐고? 연암 박지원이다.〈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란 책에 들어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장에서 나온 명문장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런 말도 나온다.

“글을 잘 짓는 자는 병법兵法을 깨친 이들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은 적국敵國일 터.”

글자와 글 뜻을 잘 버무려 구절을 만들고 문장으로 퍼지며, 거기에다 북소리/나팔소리에 깃발까지 휘날리는 운율/리듬까지 살리면, 글의 제목이라 할 수 있는 적장敵將의 목을 베어낼 수 있는 말이렷다. 멋지지 않은가?

신문 타이틀

‘대나무 숲 거닐며 심신 추스르고...’

**보통 국민이 어쩌다 실수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신문 더구나 메이저 신문이 이렇게 큰 활자로 틀리는 건 문제다.(또, J? 이번엔 D다.) ‘추스르고’가 맞다. ‘추스르다/추슬러/추슬러라/추슬렀다’ 등으로 활용된다. ‘추스리다/추스려/추스려라/추스렸다’는 틀린다.

아울러 ‘설레임/설레이다’는 오류다. ‘설렘/설레다’로 해야 바르다.

‘단언하건대’의 준말인 ‘단언컨대’도 ‘단언컨데’라고 많이들 틀린다. ‘-건대’ 자체가 고정된 어미 형태다. '-컨대'가 되는 건 [ㅎ] 요소 때문이다. ‘요컨대/예컨대/바라건대’도 마찬가지다.

‘건데‘는 ’그런데’의 준말, 부사다. 완전히 다른 용도다. ‘근데’는? ‘근데/건데’ 둘 다 인정한다. 주로 구어口語에서 쓰인다.

희귀암? 희소암?

“인공유방 보형물 이식 후 희귀암… 국내 첫 환자”

검색해 보니 어제 오늘 예외 없이 모든 언론이 희귀암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희소암이 더 설득적이다. 귀한 암은 없다! 희귀稀貴는 어디까지나 ‘드물어서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희귀병은 희소병으로 대체돼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고려대한국어사전은 ‘매우 드물어서 쉽게 걸리지 않는 병’으로 희소병을 정의하고, 희귀병도 관습을 존중해 아직까지 병기한다.

문제는 ‘우리말샘’에서는 희귀병에 미련을 두고, 이것은 ‘매우 드물어서 쉽게 걸리지 않는 병’으로 해놓고, 희소병은 ‘매우 드물어서 치료법이 개발되지 못한 병’으로 마치 의미가 구분되는 것인 양 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매우 드물어 쉽게 걸리지 않으며 치료법이 없는 병’은 뭐라 부를 참인가? ‘매우 드물고 적음’이란 희소稀少, 본래 의미로 겸허히 돌아가 희소병, 하나로 통일시키는 게 대승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희귀암도 어서 희소암으로 바꾸어야 한다.

‘희귀’는 희귀한 작품, 희귀한 인물, 희귀한 전시 등 걸맞은 예에다 맡기고 말이다.

KBS 강성곤 아나운서는 1985년 KBS입사,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위원, 미디어언어연구소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건국대,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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