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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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2018 더 나은 삶의 질 지수’(The Better Life·BLI) 종합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조사국 40개국 가운데 30위에 그쳤다. 심지어 영역별로는 사회적 관계, 환경 영역에서 40위로 최하위이다. 유엔이 발표한 2019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도 156개국에서 54위를 기록했다. 사회적 자유가 144위, 부정부패는 100위, 사회적 지원 91위로 그야말로 바닥권이다. 세계경제 10위권이라는 대한민국에게 주어진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굶주리던 나라가 경제 대국이 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2천 달러 수준으로 높아졌으면 삶의 질과 행복지수도 올라가야 할 텐데 한국인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으로 비쳐졌다. 
 
우리나라가 반세기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했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행복감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기초생활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행복은 금전적인 소득보다 개인의 정서적·육체적 건강 및 가치관과 공동체의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감내해야 하는 각종 스트레스,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 격차에서 느끼는 허탈감, 높아만 가는 청년 실업률,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겪는 노후 불안 등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행복의 문을 차츰 멀게만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흔히들 국민행복을 이야기할 때는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맥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 부탄을 이야기한다. 부탄은 1974년부터 국민의 행복지수를 국가의 통치 기준으로 삼았다. 국토도 한반도의 5분의 1 정도인 데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천 달러도 못되는 작고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웰빙과 건강, 생태계 보호 등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펴면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됐다. 
 
부탄이 이런 행복수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부탄은 우리나라처럼 국토 면적에서 숲의 비중이 높은 산림 국가이며 숲에서 누리는 행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부탄은 1990년대에 목재 수출 및 대형 목재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외화획득에 주력한 적도 있었으나 산림벌채가 물밀듯이 진행되자 3년 만에 관련 사업들을 멈추었다. 무엇보다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자연환경을 누릴 수 없다는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가장 큰 이유였다.
 
부탄이 이처럼 국민의 행복지수를 국가 통치의 첫째 기준으로 삼았듯이 행복의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가 행복지수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우리의 시스템 속에서 국민은, 국가가 행복의 틀을 만들어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행복이란 반드시 어떤 상황이나 조건이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저마다의 삶에서 불행한 면은 되도록 멀리 한 채, 먼저 행복한 면만 살펴본다면 얼마든지 행복의 문 앞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척추질환으로 몸이 마비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가 행복한 삶을 찾는 사람이라면 “나는 아직 손가락이 움직이고 숨을 쉬며 살아 있어 행복하다.”고 할 것이고, 반대로 그가 불행한 삶을 찾는 사람이라면 “움직일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내 모습이 초라하기만 하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그것을 삶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고 본다. 
 
프랑스의 고전작가 라로슈푸코는 “어떤 것이 큰 불행이고 어떤 것이 큰 행복인가. 행복과 불행은 그 분량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곧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처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작은 불행도 현미경처럼 확대하여 스스로 큰 고민에 빠진다.”고 했다.
 
설령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복지 혜택을 누리게 해주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행복감을 느끼지 않으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제 행복지수라는 수치에만 너무 얽매이지 말고 지금 우리가 많은 행복의 순간을 그냥 지나쳐 보내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행복은 어제나 우리 가까이에서 손짓하며 미소 짓고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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