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무디스가 ‘한국의 코로나19가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기존 신용등급을 유지하겠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언뜻 생각해도 매우 이례적이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 경기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고, 조사 기관에 따라선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다. 그럼에도 세계 대공황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기업들을 족집게마냥 예측해낼 때부터 세계 최고의 신용평가기관으로 자리매김해온 무디스인 만큼, 분명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무디스는 왜 그런 평가를 내렸을까. 단적으로 말해 제조업의 건재 여부를 본 것이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어느 나라든 생필품이 절실하고 일상적 생존의 펀더멘탈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아날로그적 생활 요소를 공급할 제조업 능력이 한국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는 봉쇄와 차단없이 기본적 산업기능을 작동하게 한, 한국의 모범적인 방역 시스템과 효율적인 국가 기능의 결과다. 덕분에 의식주에 필요한 기초적인 부품과 자원, 자원재 등을 생산하는 공장시설과 제조업이 한국만큼 건재한 곳이 없다는 평가다. 반면에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는 그런 능력이 한계에 달했다. 가뜩이나 구미 각국은 최근 20년 동안 꾸준히 ‘탈제조’와 디지털화(트렌스포메이션)에만 매진했다. 억만금의 비용과 새털처럼 많은 시간을 하부의 인프라, 즉 아날로그 버전을 도외시한 무형의 플랫폼 사업이나 네트워킹에 쏟으며, 더 큰 돈을 좇느라 여념이 없었다.

돈이 덜 될 것 같은 소소한 생활필수 재화 생산은 대부분 비(非)서구나 제3세계에 OEM으로 던져주었다. 그렇다보니 정작 ‘코로나’ 같은 일이 터졌을 때 이쑤시개부터 중장비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기본을 채울 수 있는 인프라가 소멸하다시피했다. 지금 와선 하다 못해 마스크물량을 제대로 댈 만한 공장도 부족하고, 물류시스템과 가치사슬이 끊기고 말았으며, 국가 기능이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초 용품도 턱없이 모자라게 되었다. 그렇다고 중국에 손길을 내밀자니 사람이나 물건, 시스템, 모든게 미덥지 않다.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새로운 대안으론 ‘사우스 코리아’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법하다. 무디스는 그래서 ‘코로나’가 끝나고 나선 한국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기본을 채워줄 세계의 응급실 노릇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로선 기분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건 그 행간의 메시지다. 목전의 IT기술주의나 디지털 문명에 대한 역발상의 성찰, 즉 ‘디지로그’의 귀환이다. 무릇 신기술이건, 산업혁명이건 그 뿌리나 모티브는 ‘과거’다. 과거의 노동이 있길래 현재의 노동과 기술이 있고, 가사노동과 같은 재생산노동이 있기에 사업장의 생산노동이 원활해진다. 19C말, 말이 끄는 마차는 사라졌지만, 다시 바퀴달린 마차인 자동차로 부활했다. 어떤 사회적, 경제적 성과도 결국은 기술과 자본의 진화로 인해 생산성이 높아진 덕분에 과거로부터 세습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독불장군이 있어 ‘무’에서 ‘유’를 만든 게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코드를 선점하며, 전승한 결정체가 신기술이며 신문명이다. 

로봇 자동화가 되었든, 육체노동이 되었든 제조업과 기본적인 인간 생존도구의 생산수단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디지로그가 새삼 소환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코로나’는 오로지 디지털 만능의 외길로만 치달아온 유럽과 미국식의 문명 스탠스에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인스턴트한 메시지로 깊이있는 의사소통을 죽이는 이진법적 기술만능이나, 흙내음 나는 아날로그의 싹을 잘라버린 허약한 ‘디지털화’나, 모두 사상누각의 문명적 패착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시그널이다.

무디스는 ‘코로나19’ 사태 발발 두 달 이상의 경과를 보고 이런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분명 ‘코로나19’가 끝나고 나면 제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계가 깨달을 것이란 훈시도 곁들였다. 그런 가운데 한국이 가진 제조업의 기초체력이 빛을 발할 것이란게 무디스의 판단이다. 하기 이는 제조업의 기초체력 차원을 뛰어넘는다. 3차산업혁명기부터 숙성되어온 디지로그 역량이라고 해야 맞다. 디지로그의 지혜와 능력이야말로 IT혁명에게 유종의 미를 안기고, 다가올 디지털 문명의 튼실한 밑천이다. 무디스의 코멘트는 그런 점에서 한국 제조업 역량에 대한 값싼 칭찬으로 볼게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라’는, 가장 기본의 메시지를 일깨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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