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정부가 ‘코로나19’ 이후의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이른바 ‘한국형 뉴딜’을 꺼내들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정으로 보인다. 문제는 콘텐츠다. 세계대공황 당시 미국식 ‘뉴딜’과 동기는 같을지언정, 그 형태나 비전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21세기 디지털혁명의 버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장은 인공지능과 IoT, 로봇 등과 인간의 일자리가 조화로운 동거를 이루는 지점에서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조화로운 동거는 자못 인문학적 발상에 기초한다. 인간과 기계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기계와 화합하면서 기계와 기술을 수단으로 부릴 인간성의 재발견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 알고리즘이야말로 21세기형 ‘뉴딜’이 취득해야 할 미래형 노동의 본질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언명처럼 ‘명확하게 정의된 업무, 계량화가 가능한 업무’일수록 알고리즘 설계가 용이하다. 그런 업무는 자동화 기계나 인공지능이 수월하게 인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복잡한 문제 해결능력, 사회적 기술, 시스템 기술의 보유자 혹은 그런 직업은 살아남는다. 그 어떤 자연의 종속변수보다 복잡한 비선형의 경우의 수가 작동하는 일자리는 기계가 쉽사리 흉내내기 어렵다. 인간사의 복잡한 문제를 통찰하고 사회적으로 조율하는 지혜는 아직은 인간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몇가지 사례를 들자면, 가상의 사이버 스페이스를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가상공간디자이너는 사이버 스페이스를 주관하는 미래의 유망직업이다. 디지털 기술이나 알고리즘,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인간 윤리적 판단을 전문으로 하는 윤리기술변호사도 부상할 것이다. 디지털문명을 움직이는 기계와 전자, 합성생물학, 디지털 물리학 따위의 윤리와 도덕률을 쟁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 직업은 인문학적 배려가 진하게 배어있다. 온라인과 사이버 세계의 문명과 문화에 대한 식견을 갖춘 디지털문화해설사도 유망직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물과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를 최적 상태로 조합해 사물인터넷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사물인터넷 데이터 분석가도 마찬가지다.

이 밖에도 우주여행 안내자나, 기술 만능의 디지털자본주의의 영적 공백을 메꿔줄 ‘길거리 목사’도 인기 직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질병 치료를 위해 나노기술과 유전공학으로 인체의 모든 부위를 부품처럼 갈아끼우는 시대가 오면, 인체디자이너도 중요한 직업이다. 네트워크와 공유경제에선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생산해야 하는 만큼, 그 상담역 기능을 하는 퍼스널 콘텐츠 큐레이터도 유망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생태복원 전략가나, 효율적인 에너지 생태를 전문으로 하는 에너지 혁신가도 예상할 수 있다. 이들 말고도 제시되는 미래의 유망직업군은 수없이 많다. 종류가 무엇이든 ‘21세기 뉴딜’과 시대정신이 교차되는 직업들이어야 한다.

이젠 기계와 기술에만 매몰된 직업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새로운 지평이어야 할 ‘뉴딜’의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디지털 홍수에 프로그래밍된 우리의 뇌를 수시로 정화하며, 본원적 사유와 감정으로 담금질하고, 속도보다 깊이를 앞세운 끝에 포효하는 ‘유레카’의 창발적 문법, 그것의 소산이 되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공유경제의 툴에서 파생된 우버나 에어비앤비, 심부름업체 태스크 래빗 등도 애초 새로울게 없었다. 배제와 소유보다 더 효율적인 공유에 대한 믿음은 이미 있어왔다. 오로지 인간 본래의 것을 다시 소환하고 재확인한데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 위에서 새로운 인류 생태계에 대한 본원적 질문과 경험의 확장으로부터 출현한 것이다. 이는 기계나 기술의 연마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인간성에 기초한 무한의 상상력은 또한 인간을 위한 무한한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한 사회가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정해져 있다는 노동총량불변의 법칙도 수정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인문학적 성찰이 있을 때 디지털혁명과 인간은 화해하며, 일과 사람의 새로운 조화가 가능할 것이다. 21세기형 ‘뉴딜’의 성패도 그런 깨달음에 달려있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