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판 뉴딜’을 선언했다. 앞으로 2~3년 간 디지털 인프라와 비대면 산업에 주력하며, 사회간접자본 디지털화를 통해 디지털 기반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하긴 ‘코로나19’ 와중에도 그랬지만, 향후 ‘포스트 코로나’ 국면은 그야말로 AI와 5G, 머신 러닝, IoT 시대다. 어차피 숙명처럼 우리네 삶의 조건은 날로 AI에 예속되고, 디지털화로 순치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 AI는 마치 구세주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우리를 포함한 제1세계 각국이 앞다퉈 AI로 백신과 진단 키트, 치료제 개발에 매진했다. 과학자들의 그런 노력 덕분에, 아니 정확히는 AI와 디지털 기술 덕분에 백신이나 치료제가 멀지 않아 등장할 것 같다.
이대로라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아예 디지털 기술이 모든 자연인의 24시를 작동하고 조종할 것 같다. 가급적이면 사람 간에 얼굴을 맞대지 않으려는 비대면(언택트)과 원격 및 재택근무 등으로 인간 삶은 디지털화된 시․공간으로 전면 대체될 운명이다. 지난 수 천 년의 인간문명 자체가 송두리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되는 것이다. 천지개벽이 따로 없다.

그래서다. 이 즈음 자동화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점령할 것이란 불길한 예감에 주목한다. 관념으로만 느껴졌던 디지털혁명이 구체적 삶의 겨드랑이를 파고들면서 그런 불안은 장삼이사 모두의 것이 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기계가 인간의 대체재냐 보완재냐 하는 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혹자는 인간은 늘 실존적 본질을 무한하게 만들어간다고 확신하며, ‘일과 사람’의 영속적 공존을 주장한다. ‘인간은 비숙련 노동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70kg의 가장 저렴하고 예측 불가한 만능 컴퓨터’라고 낙관하는 이도 있다. 
반대로 ‘인간, 너 자신을 알라’며 기계의 비교 우위를 점치고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는 비판적 성찰도 만만찮다. 인간 본위의 낙관적 전망에 대해 나르시시즘의 복음적 도그마로 일축하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실리콘 밸리 한켠에서 ‘디지털화가 인간의 무한한 소비욕을 충족시킬지언정, 완전고용의 싹을 잘라버릴 것’이라는 극언이 나오고 있어 역설적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의 화해는 불가능한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애초 물질과 정신을 망라한 인간욕구는 기계만으론 채워질 수 없다. 인간 욕구의 완전한 충족은 결국 다른 인간과의 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자동화와 AI, 사물인터넷 등의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인간’이 작동하고, 기계와 사람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하는 문법이 태동하는 것이다. 시장 창조형 혁신이나 기계에 대한 인간의 협업이 그것이다.
협업이라고 해서 기계와 인간이 공동 작업이라도 하란 뜻은 아니다. 인공지능이든, 머신러닝이든, 클라우드 컴퓨팅과 웹서비스든, 그것을 작동하고 제어하며, 창조하는 일이 인간의 몫이어야 한다. 실제로 4차산업혁명이 번성할 때 오히려 전성기를 누릴 만한 ‘디지털 시대의 유망직업’들이 그런 것들이다. IT기획자나 IT프로젝트관리자, SW아키텍트, IT감사 등은 AI나 로봇을 부리며, 소프트웨어와 IT문명의 질서를 기획한다. 디지털 세상을 갈라치고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 주도의 문명체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몫이 공고해질 때 비로소 “인공지능을 노예로 부려먹고, 그것이 생산한 부를 인간들은 n분의 1로 나눈다”는 신세기적 배분의 정의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정확히는 인간과 기계의 협업은 기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다. 인간의 행복 총량으로 이어지는 조건이다. 기계를 몸종처럼 부리는 대신, 인간은 유급노동을 줄이면서, 한층 다양한 세상의 감각적 체험을 즐길 수도 있다. 이는 또한 선택의 문제다. 기술과 도구를 인간의 노예로 삼고, 그 분배의 몫을 즐길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빼앗기고 기계의 추종자로서 긱(gig)경제의 허드렛일에 아등바등할 것인가. 곧 산업시대 이래 ‘일’이 갖는 신성한 계명을 언제까지 준수해야 하느냐는 환원적 질문이자, 인간과 기계의 매트릭스에 대한 해답이다. 마침 ‘한국형 뉴딜’도 그런 지점과 맞닿는 듯 하다. 인간과 기계의 주종관계를 통해 ‘디지털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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