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분에
‘코로나’ 덕분에
  • 박경만
  • 승인 2020.05.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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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엉겁결에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아직은 긴가민가했던 ‘디지털 혁명’이라는 전지전능한 문명의 ‘신’이 마치 도둑처럼 강림했다. ‘코로나 19’는 그렇게 온갖 IT와 ICT기술이 홍수를 이루며 세상을 재편하는 또 하나의 신세기를 열어제쳤다. 이제껏 인간이 겪어보지 못했던 최첨단의 기술 신화시대가 ‘코로나 19’와 함께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닥친 것이다. 

본래 이데아적 본질과, 진실 아닌 진리를 좇기 시작한 근대 이래, 과학과 기계에 대한 인간의 신뢰는 급격히 추락해왔다. 굳이 ‘러다이트’를 상기하지 않아도, 기계를 경멸하고 객관과 실증 너머 초월적 이성에 대한 향수는 근 2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왔다. 기계와 전자문명이 극한에 이르기까지 1차, 2차, 3차산업혁명 내내 그랬다. 그러나 그런 탈근대적 사변과 담론은 ‘코로나’라는 감염병 앞에서 그저 무색하게 됐다. 대신에 축지법과도 같은 사물인터넷과 원격기술과 인공지능, 그 실체도 아직 아리송한 블록체인과 나노생명공학과 합성생물학, 디지털물리학이 마침내 코로나 ‘이후’ 장삼이사의 일상을 좌우하게 생겼다. 어쩌면 ‘코로나 19’는 빙하기와 홍적세 이래 인류가 처음 맞닥뜨린 지구 대변혁의 뇌관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든 ‘비대면’의 영향으로 이제는 삶의 많은 부분이 가상현실이나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애초 탐욕스런 자본의 소유물이 될까 저어했던 원격 의료 서비스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이젠 그럴 수 있다’ 싶은 상식으로 치부될 법한 분위기로 돌변한 것이다. 첼로의 거장 요요마는 팬데믹 기간에 자신을 지탱하는 노래로 매일 전 세계에 원격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고, 마스터 요가 강사들은 화상을 통해 무료로 레슨을 선사하며, 코로나의 공포를 함께 이겨냈다. 코로나의 와중에 시간도 공간도 이제 ICT의 기술 속도 앞에선 속절없이 의미를 잃어버린 풍경들이다. 속도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시공간이 줄어든다고 했던가. ICT는 ‘코로나’를 업고 상대성이론의 환상같은 담론을 현실로 만들면서, 인간의 무한 욕망을 속도로 치환하고 순간이동과 같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가 사멸된다 한들, 이젠 익숙해진 이런 풍경들을 없던 얘기로 다시 되돌리기란 어렵게 되었다. 아니 불가능하다. 마치 ‘지니’가 마법의 호리병에 다시 들어가듯, 이미 문명으로 굳어진 것들을 다시 되돌릴 순 없다. 그래서 이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다. 가장 인간적인 본능과 이성을 기기에 적용하고, 이진법의 선한 변용을 통한 디지털화를 수용하고, 나아가선 기술과 인간의 화해를 모처럼 도모해보는 것이다. 
다만 질문이 하나 있다. ‘코로나 19’ 그 이후의 삶이 가져다줄 기술혁신과 디지털화의 범람 속에서 그나마 ‘인간’이 작동하고, 일과 사람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하는 문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행여 ‘인간’에 대한 사유가 없는 기술문명에 무심하게 휘둘리기라도 하면, 무채색의 병든 소비로 무장한, 미소짓는 파시즘에 지배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어볼 일이다.

그렇다면 “로봇과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이란 단편적인 조바심보다는 ‘우리는 ‘코로나 이후’에 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 건가’를 먼저 자문해보는게 순서다. 맹목적인 기술찬양론(technophilia)이나 기술 공포증(technophobia) 모두 경계할 일이다. 자의든 타의든 어차피 ‘저질러진’ 디지털혁명의 현실 앞에선 기술적 대상과 인간, 그 둘 사이의 소통과 협동, 균형있는 관계를 끊임없이 욕망할 수 밖에 없다. 기술과 인간이 서로 배타적 ‘소유’의 관계였던 3차산업혁명 이전과는 달리,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기술 사이의 바람직한 상호 작용을 촉진하며, 기술을 사용하는 궁극적 목표를 인간의 발전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오로지 교조적인 ‘휴머니즘’으로 인해 목전에 펼쳐진 첨단의 ICT문명과 기술을 어느 적정한 수준에서 딱 멈추게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해서도 안 된다. 그 보단 기술 원천에 대해 배타적인 기왕의 기술문명과는 달리, ‘열린 기술’을 소망해야 할 것이다. 행위권(actorship)은 발명가 아닌 기술 자체에 맡겨 두고, 기술 스스로 진화되고 재발명(reinvention)되는 것을 양허하는 것이다. 이는 갑작스레 미래를 선점하며, 어느 순간 활짝 피어난 IT와 ICT기술혁명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방식이다. 팬데믹과 감염병의 공포 앞에서 인류는 그런 성찰에 한 발 가까워질 법도 하다. 그렇다면 그건 ‘코로나19’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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