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제재 속, 구형 노광장비로 7나노칩 개발, “서방 경악”
中 ‘반도체 굴기’의 엔진 역할, ‘세계 파운드리 5위’로 부상
14나노 성공 후 7~14나노 공장, 7나노 SoC 등 “착실한 성장”

SMIC 생산 현장. (사진=SMIC 홈페이지)
SMIC 생산 현장. (사진=SMIC 홈페이지)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수 년째 이어지는 미국의 대중제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가 최근 7나노칩을 장착한 5G 스마트폰을 내놓는 등 중국의 ‘반도체 굴기’ 노력이 꺾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중국이 버틸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 그 일등 공신으로 중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 SMIC(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화웨이 5G 스마트폰에 7나노칩 장착

SMIC는 세계5위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전황수 연구전문위원과 최새솔 센터장 등 국내 전문가들은 “SMIC는 2000년 설립 이래 막대한 내수시장과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화웨이와의 협력, 그리고 초대 회장 리처드 창의 리더십과 대만 TSMC 출신 반도체 전문가들의 기술 지도 등에 힘입어 중국 최대이자, 세계 5위의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했다.”면서 “그 결과 미국의 대중 제재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증가하고 7나노 칩 생산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이들 전문가들의 최근 정보통신기획평가원 기술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이로 인해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화웨이는 5G 스마트폰 ‘메이크60’에 자사의 7나노 공정 AP ‘기린9000s’를 장착하기도 해 서방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물론 이는 SMIC가 생산한 것이다. 애초 미국은 수출을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토록 했다. 이에 SMIC는 DUV(심자외선) 장비를 사용, 7나노 칩 생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 인해 화웨이는 5G 스마트폰이 자국 내에서 날개돋힌 듯 팔리면서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이에 애플은 아이폰15 할인판매에 들어갈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SMIC가 생산한 웨이퍼. (사진=SMIC 홈페이지)
SMIC가 생산한 웨이퍼. (사진=SMIC 홈페이지)

설립 24년째인 SMIC는 상하이에 본사를 두고, 중국과 해외에 파운드리 공장이나 사무소를 두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 삼성전자, UMC, 글로벌 파운드리에 이어 시장의 5%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350나노(nm)부터 7나노 공정기술까지 집적회로(IC)를 제조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는 화웨이, 퀄컴, 브로드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등이다.

화웨이와 SMIC는 DUV 등 수율이 떨어지는 구형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의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7나노를 생산한데 이어, 멀지않아 더욱 정교한 5나노 공정을 적용한 차세대 기술을 개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설립 초기부터 장비수입구제 등 미국 제재 대상

SMIC는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2023년 3월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에 전년도보다 33.6% 증가한 역대 최대 매출인 72억 달러, 순이익 18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매출의 74%를 중국 내의 시장이 차지한 것도 미국이 제재 영향을 덜 받은 요인이 되었다.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에 필요한 첨단 반도체 공정에선 미국의 제재 영향을 받았지만, 자동차부터 가전에 들어가는 대다수 레거시 공정에서는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SMIC는 설립 초기부터 미국의 견제를 받았다. 2005년 SMIC는 미국의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로부터 10억 달러 상당의 칩 제조장비를 구매하려했으나, 미국 정부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결국 SMIC는 절치부심한 끝에 2019년 11월 14나노 공정을 시작했다. 이에 미 상무부는 2020년 12월 SMIC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특히 주요 반도체 장비 대부분을 미국, 네덜란드, 일본 등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SMIC 등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SMIC는 이에 맞서 우선 가전 제품용 등 ‘레거시 공정’에 주력하되, 첨단 미세공정도 함께 개발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출처=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출처=한국전자통신연구원)

첨단 칩 개발과 동시에 ‘레거시 공정’에 주력

흔히 첨단 반도체는 10나노 이하의 첨단 초미세 공정으로 제작된 반도체가 이에 해당한다. 주로 스마트폰 AP나 인공지능 첨퓨터칩, 메인 메모리 반도체 등에 사용된다. 이에 비해 레거시 반도체는 28나노 이상의 공정기술로 만들어진 반도체다. 산업용 로봇, 자동차, 가전제품, 전력계통 설비, 모든 공산품에 탑재된다. 때론 미사일, 로켓, 군용 무전기 등 방위산업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첨단 공정 반도체는 기술 개발과 설비투자 등 진입장벽이 높은 반면, 레거시 공정은 SMIC 등 중국 업체들도 대량생산 체계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 2022년 3분기에 SMIC는 8인치 웨이퍼 월 79만 5,750장의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이는 전년동기보다 12% 확장된 규모다. 또한, SMIC는 DUV 노광장비를 자체 개발해 해외업체의 설비 없이도 직접 레거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7년 글로벌 레거시 반도체의 42%가 대만, 33%가 중국에서 생산되며, 미국은 5%, 한국은 4%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반도체용 ‘블랭크 마스크’처럼 자체 개발이 당장은 어려운 소재에 대해선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 조달하되, 국산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MIC의 미세공정 개발 현황. (출처=한국전자통신연구원)
SMIC의 미세공정 개발 현황. (출처=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인재확충, 해외기술 전수, 정부 지원, 거대한 내수가 성장요인

그러면 SMIC는 어떻게 미국의 대중 제재를 뚫고 이같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까. 전문가들마다 견해가 다소 다를 수도 있으나, 대체로 고급인력 확충과 한국, 대만, 일본 등으로부터의 기술 전수, 그리고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거대한 내수 시장 등이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SMIC는 최근까지도 앞서 ‘블랭크 마스크’와 같은 소재 국산화에 필요한 반도체 고급 인력을 TSMC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서 고액 연봉을 내걸고 대거 충원하고 있다. 또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잇따라 5나노, 3나노, 2나노 등 반도체 미세공정을 구현한 데 자극을 받아 2015년 28나노 공정을 대량 생산한데 이어 2017년에 TSMC 및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미세공정 전문가 양명쏭을 공동대표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설립 초창기에는 TSMC 출신 등 대만의 반도체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 반도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초대 CEO로 반도체 전문가인 중국 난징 출신 리처드 창을 초청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리처드 창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TI에서 20년 간 근무한 반도체 양산기술 전문가다. 그는 2009년까지 SMIC를 이끌면서 오늘날의 SMIC의 기반을 마련했다.

앞서 전황수 연구전문위원 등에 따르면 현재 SMIC의 전체 직원 수는 21,619명이다. 그 중 생산 인력이 16,903명으로 가장 많고, R&D 인력 2,326명, 판매 인력 243명 등이다. 이들 대부분이 석․박사 내지 학사 출신이다. 2021년 용도별 웨이퍼 매출을 보면, 스마트폰 32%, 소비자 가전 24%, 스마트홈 13%, 기타 31%로 알려졌다.

SMIC는 7나노 반도체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EUV 장비를 수입할 수 없게 되자, 한 단계 낮은 DUV 노광장비를 이용,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국 등 서방세계에 충격을 줬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23년 12월에는 DUV를 활용한 3나노 반도체칩 개발을 위한 R&D팀을 구성, 본격적인 도전에 나섰다.

SMIC, 미 대중제재 후폭풍의 발원지될 수도?

앞서 지난 2019년에는 ‘FinFET’ 공정으로 대량 생산을 개시했고, 14나노 기술도 확보했다. 2020년에는 7~14나노 첨단 공정의 베이징 3공장을 지었고, 화웨이의 스마트폰용 14나노 AP ‘기린10A’도 생산해냈다. 또한 2022년에는 7나노 공정의 SoC를 생산, 비트코인 채굴장비업체 마니어바에 공급했다. 그리고 2023년 8월에는 마침내 화웨이의 5G 스마트폰 ‘메이크60’에 7나노 공정 AP ‘기린9000s’를 장착하기에 이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TSMC와 삼성전자가 3나노 양산에 성공하고 2나노 생산에 돌입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이들 선도업체에 비해 5년 정도의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SMIC생태계 구성도 (출처=SMIC 홍페이지)
SMIC생태계 구성도 (출처=SMIC 홍페이지)

그런 가운데 일각에선 “미국의 지나친 대중제재가 세계 시장의 왜곡을 부를 위험이 크다”거나, “대중제재보단 미국이 세계 반도체설계 부문에서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는게 중요하다”는 비판섞인 조언도 나오고 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특히 SMIC를 중심으로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맞서 시장의 주류인 28나노 이상 레거시 공정 투자를 증대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과잉, 그리고 가격 인하를 촉발시킬 것이란 우려다.

특히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TSMC도 매출의 25%는 28나노 이상의 레거시 공정에서 나오기 때문에 SMIC 등 중국업체이 급격히 생산을 늘리며 덤핑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런 경우 서방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며, 심지어 서방 반도체 업체들이 줄도산할 가능성도 클 것”이란 의견이다.

SMIC는 그런 미국의 대중제재가 몰고올 후폭풍의 발원지가 딜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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