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거액 과징금, 미 법무부 소송, ‘애플카’ 사업 전격 취소
중국 내 시장점유율 급감, XR기기 ‘비전 프로’도 부진, AI경쟁 뒤처져
전문가들 “인재유출 등 애플 경영 문제많아, 위기 극복 여부 불투명”

(사진=어도비 스톡)
(사진=어도비 스톡)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최근 ‘애플’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다. 자산 규모나 시가 총액 등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빅테크 중에서도 유독 애플은 지금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휘청거리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역사적인 시장 가치 3조 달러에 도달하며 잘나간다 싶었지만, 최근 몇 주 동안 수천억 달러가 사라져버렸다. 대신 애플의 경쟁자이자 동맹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대신해 세계에서 으뜸가는 기술기업으로 올라섰다.

특히 애플이 최근 EU로부터 한화로 3조 가까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으면서, 엎친데 덮친격의 시련을 겪고 있는 현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애플은 이번 EU제재뿐 아니라, 이미 자국에서도 독점금지법 위반을 놓고 법무부와 소송 중이다. 게다가 최근엔 십수년 간 공을 들이며 매년 10억달러씩 돈을 물쓰듯해온 ‘애플카’ 사업을 전격 취소했다. 중국의 경기침체와 현지 기업 화웨이 등의 선전으로 인해 애플의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매출이 급감, 파격적인 할인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나마 내놓은 XR기기 ‘비전 프로’ 역시 아직은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한 상황이다.

더욱이 애플의 가장 큰 숙제는 AI분야에서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심지어 아마존에게까지 뒤처지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게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데 애플의 고민이 있다.

이에 최근 유력 외신들도 애플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짚으며, 그 불투명한 앞날을 예견하고 있다.

EU로부터 과징금 ‘폭탄’

무엇보다 애플에게 닥친 최근의 가장 큰 타격은 EU의 규제다. 거액의 과징금을 부여받은데 이어, 이번 주부터 발표될 EU DMA(디지털시장법)에 때라 사용자들에게 폐쇄적인 인 앱 결제 대신 외부 앱 스토어를 허용해야 한다. 블룸버그는 “그 동안 인 앱 결제를 통해 오로지 애플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한 애플 생태계, 즉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앞으로 사용자들은 ‘사이드 로딩’ 프로세스를 통해 애플의 앱 스토어 외부에서도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또한 대체 결제 시스템을 활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기본 웹 브라우저를 더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앱 스토어를 이용해온 수많은 개발자들과 각국 규제 기관들이 지적해온 문제점이 차제에 사라진 것이다.

애플은 물론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소프트웨어의 사용자 경험과 보안을 훼손할 것”이라는 오래된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동안 하도 소비자들의 불만이 거세고, 규제기관들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애플은 마지못해 자사 앱 스토어 구매에 대한 수수료를 낮추긴 했지만, 역시 “바가지를 씌운다”며 반발하는 개발자들의 분노를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EU조치로 인해 애플로선 연간 수백억 달러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쪼개지는 셈이다.

미 법무부와도 ‘독점금지법’ 위배 소송

유럽뿐 아니라 애플은 자국 법무부와 치열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 법무부는 무려 5년 동안이나 애플을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해 왔다. 법무부는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제한을 가해 경쟁업체들의 경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에 정통한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소송은 3월 말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야 겨우 연방정부 예산 집행이 정지되는 모라토리움이 양당 간의 합의로 풀리게 되어, 좀더 연장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 가운데 애플은 지난 2월 법무부와 만나 소송을 취하하도록 설득전을 펼쳤으나 아직은 미정이다.

‘AI 따라잡기’에 숨가쁜 상황

2022년 오픈AI의 챗GPT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이후 다른 빅테크나 스타트업 등 지구촌 IT업계는 앞다퉈 생성 AI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오직 애플만이 비교적 ‘조용한’ 스탠스로 일관, 시장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애플은 “AI가 본사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에 오랫동안 통합되어 왔다”고만 할 뿐 이렇다할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에 ‘생성AI 열풍’이 거세지자, 지난해 6월에 와서야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를 통해 팀 쿡 CEO는 AI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며 “이것이 사용자에게 혁신적인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뒤늦은 출발 신호를 알렸다.

그 후 애플은 운영 체제 업데이트를 위해 새로운 AI 기능을 다수 개발하고 있다. 뒤늦었지만 작업 속도를 높이기 AI앱 개발자들을 겨냥한 새 소프트웨어 도구의 완성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알파벳의 구글은 AI 기능이 탑재된 휴대폰 ‘픽셀’을 공개했고, 경쟁업체인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 S24 프로를 통해 ‘AI스마트폰’ 시대를 선언한 뒤였다. 오픈AI의 가장 큰 후원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꾸준히 AI 성능을 업데이트하며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애플은 이미 버스 지나간 뒤 손드는 격”이 아니냐는 평가도 많다.

애플 최대 시장, 중국 내 시장 점유율 급감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도 큰 난관 중의 하나다. 애플은 지난해 이후 중국 시장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첫 6주 동안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이 24%나 급감했다.

물론 중국 시장이 침체되긴 했지만, 애플은 다른 경쟁사들보다 더 빠르게 중국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그런 가운데 중국 기업인 ‘비보’(Vivo)가 중국 최고의 스마트폰 업체로 부상했다.

이에 애플은 지난 1월에 웹 스토어에서 보기 드문 파격 할인행사를 하기도 했다. 이에 현지 리셀러들은 아이폰을 최대 180달러까지 인하했다. 더욱이 중국 정부가 외국 기술을 사용한 제품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애플로선 고민꺼리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애플의 주 시장인 미국 내에서 제조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여서 애플은 진퇴양난에 처한 상황이다.

애플 CEO 팀 쿡. (사진=게티 이미지, 월스트리트 저널)
애플 CEO 팀 쿡. (사진=게티 이미지, 월스트리트 저널)

십수년 공들인 ‘애플카’ 취소, “천문학적 ‘돈’만 날려”

지난 주 애플이 자동차 프로젝트를 중단한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투자자들은 환호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 소식은 결국 이 회사가 더 이상 불투명한 장기계획에 매년 10억달러씩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애플로선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사업을 접음으로써 어쩌면 가장 큰 돈벌이가 될 수도 있는 분야에서 손을 뗀 셈이다. 만약 어렵사리 전기 자동차를 만들 수만 있다면, 적어도 대당 10만 달러(한화 1억3천만원) 짜리 제품을 팔 수도 있다. 마진이 적더라도 가뜩이나 사세가 줄어들고 있는 판에 매출 증대의 지렛대가 될 것이란 기대였다.

실제로 애플은 지난 회계연도 매출이 3% 감소해 2016년 이후 최악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더욱이 자동차 사업을 접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선 “애플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안전한 길만 찾아서 간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야심작 ‘Vision Pro’, 시장은 ‘시큰둥’

애플은 그런 가운데 2024년에 XR기반의 자칭 ‘공간 컴퓨팅’이라고 부른 ‘Vision Pro 헤드셋’을 출시했다. 애플이 모처럼 내놓은 야심작인 셈이다. 이는 출시 직후 리뷰어들을 놀라게 했으며 얼리 어답터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3,500달러라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존재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모욕적인 평판을 받으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더욱이 장시간 착용하기에는 고글이 너무 무겁다는 비판이다. 더욱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무거운 고글을 위한 전용 앱 개발을 미뤄온 상태다.

팀 쿡의 원래 비전은 사용자가 하루 종일 착용할 수 있는 가벼운 증강 현실 안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가벼운 장치를 위한 기술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다. 그 때문에 애플은 AR과 가상 현실을 결합한 더 큰 헤드셋으로 만족해야 했다.

앞으로 과제는 비전 프로를 더 가볍고 저렴하게 만들어 일반 소비자가 한층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적어도 그러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게 중론이다.

아이팻 이후 10년 간 ‘태블릿’ 제품 감감무소식

아이팻 이후 애플은 10년이 넘도록 새로운 태블릿 컴퓨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태플릿 기기 판매량은 2011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중 약 40%가 애플 아이팻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더 큰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선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애플이 단 하나의 새로운 아이팻 모델도 출시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스티브 잡스가 2010년에 처음으로 아이팻을 공개한 이후로 이런 ‘가뭄’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나마 최근 애플이 획기적인 새 아이팻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긴 하다. ‘테크레이다’ 등에 따르면 업데이트된 ‘아이팻 에어’는 애플로선 처음으로 두 가지 크기로 출시될 예정이다. 그 중 프로 모델에는 OLED 화면이 탑재된다. 과연 이런 시도가 그간의 부진을 씻어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산소 센서기 ‘스마트워치’도 특허시비로 폐기

애플은 최근 혈액 산소 센서기가 탑재된 스마트워치 버전의 판매를 중단해야 했다. 이는 의료 기기 제조업체인 일본의 ‘마시모’와의 법적 싸움 때문이다. 문제의 스마트 워치는 애플의 웨어러블, 홈 및 액세서리 사업부의 핵심 제품이다. 작년 매출의 10% 이상, 즉 거의 400억 달러를 창출한 사업이기도 하다.

애플은 혈액 산소 센서 기능을 비활성화하고, 다시 시장에 출시할 수 있었지만, 막강한 시장 장악력을 과시해온 애플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혈액 산소 기능이 빠지면, 앞으로 고혈압이나 수면 무호흡증을 측정하는 등 미래형 애플워치 개발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재 유출도 큰 문제다. 애플은 임원들의 이직이 잦고, 관리자 층이 두껍다. 그런 가운데 최근엔 가장 유능한 리더 중 상당수를 잃었다. 특히 디자인 팀에서 더욱 그렇다. 대표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수석 산업 디자이너이자 애플 특허의 최대 보유자 중 한 사람인 바트 앙드르가 있다. 또 톱 디자이너 콜린 번스, 아오야기 쇼타, 피터 러셀 클라크도 지난해 연말 모두 떠났다.

이로 인해 ‘애플 미학’의 선구자이자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이끌던 팀은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아이브의 후임 부서장인 에반스 행키마저 작년에 떠났다.

이들 디자이너나 사용자 인터페이스 그룹은 회사의 최고 운영 책임자(COO)인 제프 윌리엄의 명령체계에 따른다. 그러나 “디자인과 혁신을 전담하는 부서를 운영 담당자가 감독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위화감이 커졌다”는게 애플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의 얘기다.

“다음 분기별 실적도 비관적” 예상

이런 상황에서 애플의 다음 분기별 보고서는 비관적이다. 지난 분기에 애플은 코로나19 직후의 분출된 ‘보복소비’ 덕분에 매출이 급증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한 횡재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달까지 이어지는 이번 분기 매출이 약 4%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애플의 매출이 지난 6분기 중 5분기 동안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특히 애플의 주가도 기로에 서 있다”면서 “실패한 자동차 프로젝트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비전 프로, 그리고 뒤처진 생성AI가 애플의 과거 ‘영광’을 흐리게 하고,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 국면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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