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의 사례
시중은행가운데서는 처음으로 NH농협은행이 통신3사 본인인증 애플리케이션(앱) 기반 사설인증서인 ‘패스(PASS) 인증서’를 도입한다. 농협은행은 생활금융 플랫폼 ‘올원뱅크’와 패스 앱을 연계해 패스 인증서와 ‘패스 간편로그인’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패스 인증서는 패스 앱에서 무료로 1분 이내에 발급받을 수 있다.

NH농협은행은 이미 적극적인 블록체인 행보로 주목받고 있었다. 농협은행은 이달 초 가상자산(암호화폐) 커스터디 사업 진출의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커스터디란 자산을 대신 보관하고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금융사들이 전통적인 금융자산을 수탁·관리해주는 기본적인 금융업무였는데, 여기에 최근 가상자산 산업이 발달하면서 가상자산도 커스터디 서비스의 영역으로 포함된 것이다. 농협은행은 특금법 통과로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으로 편입돼 성장 기반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농협은행은 이미 국내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과 '코인원'에 실명계좌를 발급하고 있는데, 다른 은행들이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 발급을 중단하던 시기에도 거래를 끊지 않았다. 지난 2월에는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인 분산신원인증(DID) 시스템이 적용된 '모바일 사원증'을 시범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블록체인 진흥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로 중간자 개입 없이 개인과 개인이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넘어 전 산업의 비즈니스 플랫폼 적용과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대한 고도화를 목적으로 진화되고 있다. 최근 정부도 블록체인 사업 진흥을 위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언택트 사회의 핵심기술로 꼽고, 본격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블록체인은 기술의 특성상 데이터의 위변조를 방지해 정보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당연히 주목받아야 하는 기술이다. 정부는 블록체인의 강점을 잘 발휘할 수 있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7개 분야에서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기로 했다.

블록체인 원천기술 개발에 정부가 5년간 1133억원을 투자하는 방안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마침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신고제 등의 내용을 담은 특정 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특금법) 개정안에 이어 세법 개정안까지 발표됐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 도입, 자금세탁방지 의무 부여, 실명 확인 가상계좌 발급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블록체인 기술 응용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출원된 특허 종류를 살펴보면 지난 5년간 인증/보안 기술이 614건(21%), 핀테크 573건(19.6%), 자산관리 405건(13.8%), 블록체인 기반 374건(12.8%), 플랫폼 응용 167건(5.7%), 이력관리 140건(4.8%), 사물인터넷(IoT) 31건(1%) 등 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고른 연구가 있었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블록체인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본래 취지대로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에 대한 공격을 탐지하는 기술, 위변조 검증 및 방지에 관한 블록체인 특허출원은 2015년 9건에서 2019년 285건으로 증가하며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보안에 특화된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코로나19가 극복된 이후에도 비대면 업무환경과 서비스는 증가할 것이다 이에 비례한 보안 위협도 증가할 것이다. 블록체인으로 구현된 인증/보안 기술 관련 특허 출원은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개발의 속사정
국내 블록체인 특허 출원은 급증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중소기업들이 출원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국내 블록체인 특허 출원은 총 24건에 그쳤다. 대부분 가상자산 관련 특허였다. 비트코인이 대중에 갓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다. 이후 가상자산 투자 열풍을 타고 블록체인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며 특허 출원도 급증하기 시작했다. 2019년 특허청에 출원된 블록체인 특허는 1301건에 달한다. 5년 사이 무려 50배 이상 폭증했다. 추세다. 가상자산 투기 광풍이 가라앉으며 블록체인의 실사용성을 높이려는 연구가 증가한 까닭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출원인 집계에서는 중소기업이 1580건(5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대기업은 233건, 8%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능력이 뛰어나서는 아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가 큰 이유는 중소기업이 잘해서라기보다는 국내 대기업이 아직 블록체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업이 참여를 주저하는 이유
블록체인의 인기가 한창 치솟던 2017년, 우리 정부는 ICO 전면금지를 선언했다.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성 블록체인 프로젝트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필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후다. 이후 정부는 블록체인과 관련된 명확한 근거법을 제정하지 않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방침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암호화폐 관련 산업의 제도화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고는 하지만 이마저 규제 편의주의라는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아직 대기업의 본격적인 투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5월 삼성전자 블록체인 기술 연구 조직이 2년 만에 해체된 것도 마찬가지다. 텔레그램도 그간 야심차게 추진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톤(TON)’의 추진을 공식 포기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하는 기업 198개 중 매출을 내는 기업은 44개에 불과했다. 매출이 없고, 규제 불확실성에 성장가능성도 불투명해 투자도 제대로 받을수 없었다.

기업공개도 어려워
암호화폐로 사업을 하는 벤처·스타트업은 기업공개(IPO)도 어렵다 거래소가 공개허용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판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왓챠는 올해 초 본격적인 상장을 준비하다 거래소로부터 ‘암호화폐 사업을 갖고 있으면 상장이 어려울 수 있다’는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통보받고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왓챠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산타토익’으로 유명한 인공지능(AI) 기반 에듀테크 업체인 뤼이드도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서비스를 폐지했다. 사전에 IPO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들에게 암호화폐를 없애라고 하는 것은 생태계 자체를 확장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을 없애는 것과 같다. 거래소가 암호화폐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에 대한 IPO를 사실상 불허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외에 구체적인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다. 정부가 수년째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나 규제방안 등에 대해 명확한 입법을 하지 못한 결과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들에게 암호화폐를 없애라고 하는 것은 생태계 확장의 주요 수단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생태계 조성이 필요
포브스는 최근 블록체인 기술 시장이 2025년까지 연평균 38.4% 성장, 210억7000만 달러(약 25조6000억)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몇 년 전 투자 광풍을 일으키며 한때 2800만원이 넘었던 국내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은 최근 폭락해 절반 이하인 100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블록체인산업에 필요한 것은 생태계 조성이다. 블록체인 기술 공급 산업과 수요 산업 간 융합 노력이 필요하다. 블록체인의 성공은 그 무엇보다 플랫폼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하고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데이터 저장과 관리 인프라인 데이터베이스이자 분산 원장일 뿐이다. 가치는 관련 이해 당사자들이 플랫폼 위에서 얼마나 많은 성공적인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시스템이 정착될 때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블록체인 기술과 서비스 필요성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4차 산업혁명의 선도 산업으로서 블록체인 산업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